김선우 시인·소설가
사는 게 어처구니없는 시절이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그저 어이없고 황당한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요즘의 어처구니없음은 거의 언제나 누군가(들)의 죽음에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허탈감과 분노에 계속 노출된 개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냉소와 무관심을 구조화하고, 이제 어디서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린다.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맷돌을 돌리려는데 손잡이가 없는 상황! 도끼질을 하려는데 도낏자루가 없는 경우와 같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가.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 원효가 짓고 불렀다는 이 문장은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괴는 기둥을 깎겠다”로 흔히 해석된다. 노래 속 원효의 욕망을 알아챈 왕이 요석공주를 내주었다는 너무나 상투적인 이야기로 떠돌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이 한자 조합을 이렇게 읽는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친 기둥을 찍어 버리겠노라!” 어처구니없는 도끼로 하늘을 떠받친 기둥을 끊어내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사자후.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도끼의 가장 빛나는 역발상이다. 맨몸뚱이 하나로 사는 백성들은 애초 어디에 의지할 데 없는 손잡이 없는 도끼 신세 아닌가. 어처구니없는 백성의 삶이 어느 날 자신들만의 진정한 어처구니를 찾아 일어설 때 새 하늘이 열리리라는 사자후가 요즘 자꾸 떠오른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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