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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꼰대 진단법

등록 2014-12-01 18:46수정 2014-12-02 11:01

지난해 9월 30일 저녁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가 있는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앞 광장에서 ‘시로 점령하라’는 제목의 침묵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석학 알랭 바디우와 고은 시인, 시민 등은 이날 각자 준비한 시집을 읽으며 쌍용차 투쟁에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
지난해 9월 30일 저녁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가 있는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앞 광장에서 ‘시로 점령하라’는 제목의 침묵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석학 알랭 바디우와 고은 시인, 시민 등은 이날 각자 준비한 시집을 읽으며 쌍용차 투쟁에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
시, 소설 읽을 시간이 어딨습니까. 다른 책 읽기도 바쁜걸요. 책깨나 읽는다는, 흔히 지식인입네 하는 이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세계적인 트렌드인 피케티니 지제크니 유명 석학들의 신작 쫓아가기도 바쁜데 한가롭게 문학책 뒤적일 시간이 어딨소 하는 뉘앙스들. 이런 반응에서 나는 묘한 ‘꼰대성’을 느낀다. 알다시피 유식과 삶의 지혜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반대이기도 해서 지식, 정보, 교양이 많을수록 그에 치여 오히려 삶에 대해선 수동적, 방어적, 보수적이 되는 아이러니도 흔히 발생한다. 삶이란 사람들과의 관계맺음, 만남과 이별의 연속과정이다. 그러니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흔히 말하는 공감능력이 높을수록 좋은 삶에 가까워진다. 문학은 타자의 마음에 관여하는 글쓰기다. 논리정연한 이론으로 단순환원되지 않는 들쭉날쭉한 삶의 구체를 들여다보고, 가장 남루한 타자로부터도 존재의 단서를 밝혀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시가 한 사람의 타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해에 더 집중한다면 소설은 자신이 아닌 타자들에 대한 이해에 더 집중한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시를 읽고 가슴 먹먹해본 기억이 없고, 소설 속 타자들과 함께 인간 조건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는, 그런 지식인들이 생산하는 화려한 이론의 궤적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지식생산자들이 흔히 꼰대의 한 전형을 이룬다. 게다가 지식에 파먹혀 정작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꼰대스러움엔 대책이 없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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