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오래전 중국을 여행할 때였다. 겨울이었고 모래바람 심한 둔황 근처였다. 홑겹 단화 밖으로 맨발목이 발갛게 드러난 허름한 차림의 젊은 여자와 어린 딸애가 덜렁 철화덕 하나 놓고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여자에게서 군고구마 한 봉지를 샀다. 3위안이라 했고, 나는 10위안짜리 지폐를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가 거스름돈을 찾는 사이 나는 딸애와 잠깐 눈을 맞추었다. 성에꽃 같은 아이였다. 거스름은 필요 없다고 여자에게 말한 다음 순간, 여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닦아세우듯 말했다. “부야오!”(필요 없다, 이러지 말라) 그때 여자의 그 눈망울, ‘지금 나한테 적선하는 거니?’ 따지는 듯한, 자존감 가득한 눈망울! 그 여행에서 내가 만난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눈이었다. 여자는 결국 거스름을 주지 않았다. 대신 여자는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건넸던 군고구마 봉지를 도로 가져가더니 거기에 고구마를 미어지게 담아 내 손에 다시 들려주었다. 여자가 무어라 빠르게 말했으나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자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하게 “게이 니, 리우!”라고 말했다. 너에게 준다, 선물이다! 종이봉지가 터질 것 같은 군고구마 한 봉지. 내가 받아든 것은 고단한 현실을 뚫고 나온 한 소절의 맑고 당당한 노래, 가난의 강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의 선물이었다. 여자가 베푼 뜻밖의 포틀래치, 이 세상 추운 마음 하나를 덮는 시, 나도 너에게 작은 선물이기를 기도한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