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가을이면 내가 가장 탐하는 채소가 ‘무우’다. 무우는 워낙 쓸데 많은 채소이고, 무우요리 또한 끝이 없다. 가을무우를 구덩이에 잘 보관했다가 한겨울에 꺼내 살강하게 언 듯한 그것을 쓱쓱 깎아 야참으로 먹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몸속이 환해지듯 시원하다. 무우맛! 무꾸, 무시, 무수 등의 토박이말들로 발음될 때 무우의 맛은 절정에 달한다. 그러니 내게 무우맛은 내 고향 말로 ‘와, 무꾸 맛나다!’라고 할 때가 절정인 셈.
십년쯤 전에 <나는 아무래도 무보다 무우가>라는 제목의 시를 쓴 적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보다는 ‘무우’라고 발음할 때 컴컴한 땅속에서 스미는 듯한 무우의 흰빛 같은 게 느껴지고 무우─ 하고 땅속으로 번지는 흰 메아리 같은 느낌이 살아나니 무우를 무조건 무라고 쓰라는 건 싫다는 내용이다. 중국처럼 지역말 간의 편차가 너무 커 공적인 소통 자체가 불가할 경우 베이징(북경)어를 중심으로 표준말을 정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겠으나, 우리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여러 지방의 말 중 서울방언을 표준어로 정해 쓰는 것일 뿐인데, 서울 중심의 편의성에 기댄 권위적인 표준말 규정에 왜 몽땅 따라야 하지? 준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하더라도 본딧말 역시 널리 쓰이고 있으면 둘 다를 표준말 삼는다는 부가규정도 있지 않은가. 나는 무우만큼은 앞으로도 무라고 쓰지 않겠다. 저 이쁜 무우한테 무가 뭡니까? 하늘은 높고 무우는 살찌는 계절, 무우를 내놓으시오. 무우!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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