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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나의 묘비명

등록 2014-11-02 18:36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모차르트의 레퀴엠, 베토벤의 장엄미사, 말러의 교향곡 5번, 그레고리오 성가를 하루 종일 들었다. 그리고 다시, 범종 소리를 듣는다. 내가 최상의 묘비명이라 여기는 것은 여전히 카잔차키스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카잔차키스 교도였던 나는 일기장을 새로 바꿀 때마다 그의 묘비명을 맨 앞장에 써두곤 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이십대를 거쳐 삼십대에는 스탕달의 묘비명에 꽂혔다.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이 묘비명을 처음 봤을 때 ‘아뿔싸, 그가 이미 써버렸군!’ 싶었다. 거의 언제나 내 피를 자극하는 뮤즈인 니체는 “이제 나는 명령한다. 차라투스트라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발견할 것을”이라는 묘비명을 남겼다. 그럼요, 그래야죠. 천년을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사는 수밖에 없죠! 아무려나 마흔쯤 되니 좋은 것은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나의 과거이자 미래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것. 이런 안목은 나이 들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의 선물이니 시간 속으로 전진하는 몸과 마음에 축복 있으라. 나의 묘비명을 꺼내어 읽어본다. 마흔에 첫 묘비명을 쓴 나는 삶이 허락된다면 쉰이 되는 날 새로운 묘비명을 쓰게 되리라. 묘비명을 생각하고 유언장을 쓰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깨닫게 한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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