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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돌아보니 몸이 없다

등록 2014-10-26 18:36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오랜만에 전화를 거니 A의 휴대폰에서 계곡물 소리와 풍경 소리가 들린다. A의 고단한 서울살이를 아는지라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B는 요즘 불면증 때문에 수면 유도용 ‘자연의 소리’ 애플리케이션을 켜놓고 잔다고 한다. 비, 새, 풀벌레, 천둥, 바람 소리에 이르기까지 사용자 취향에 맞게 선택하고 믹싱도 할 수 있다는 ‘자연의 소리’가 기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세상이다. 좋아하는 음악은 엠피3보다는 시디로 들어야 귀가 충족되는 나는 이 스마트한 ‘자연의 소리’ 앞에 한동안 멍했다.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밤의 소리, 인디언 플롯’을 듣다가 공연히 눈가가 덥다. 지금 우리는 자연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시공간으로부터 대체 얼마나 멀리 온 걸까. 공간적 거리라기보다 심리적 거리라고 할 이 막막한 소외감. 아이러니한 것은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는 인간이 자초한 삶이라는 거다. 자초한 배제로부터 외로움을 느끼며 다시 자연의 소리를 마음 치유 도구로 사용하는 현대의 삶이 쓸쓸하다. 문득 맥락 없이 떠오른 롤랑 바르트. “언어는 피부다: 나는 내 언어를 다른 언어와 문지른다. 그것은 마치 내게 손가락 대신 말들이 있는 게 아니라, 내 말들 끝에 손가락이 있는 것과 같다.” 스마트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자연의 언어에 인간의 언어를 문지르고 싶은 나. 숲과 바람과 비의 몸에 내 몸을 문지르고 싶다. 헐겁게 벗겨진 피부로 우리는 춥고 외롭구나. 돌아보니 어느새 몸이 없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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