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그리스 철학자 중 내게 매력적인 이는 단연 디오게네스다. 햇볕바라기를 하기 좋은 쌀쌀한 가을에 그를 떠올린다. 그는 스스로를 ‘세계시민’이라 칭하며 자기 삶의 주인인 자만이 누리는 파격과 자유를 온몸으로 살았다. 제국주의 욕망의 발현자인 알렉산드로스가 뭐든 해줄 테니 말하라고 유혹하자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좀 비키시지’라고 대꾸한 유명한 일화가 보여주듯 디오게네스 앞에선 어떤 권력자의 권위도 통하지 않았다. 고작 왕일 뿐인 당신이 자유인인 내게 대체 뭘 해줄 수 있다는 거지? 하는 배짱. 귀족과 권력자에 밀착해 살았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디오게네스는 권력자의 과시욕에 정면펀치를 날리고 부박한 욕망을 비웃으며 당대 민중과 함께 거리에서 살았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사유하지 않은 그에게 철학은 삶과 유리된 엘리트주의 ‘학문’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야채 씻는 걸 본 플라톤이 말한다. “그대가 디오니시오스 왕에게 봉사했다면 지금쯤 야채 따위를 손수 씻는 일은 없었을 텐데.” 디오게네스가 응답한다. “그대가 스스로 야채 씻는 법을 알았다면 디오니시오스 왕 따위에게 봉사하며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유실되어 전하지 않는 그의 저작 <공화국>(Republic)을 읽고 싶은 날. 자본과 욕망의 노예인 핵심권력자들과 그 노예인 중소권력자들이 노예의, 노예에 의한, 노예를 위한 정치경제 중인 여기. 가깝고 먼 데서 익어가는 짱짱한 햇빛 그립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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