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산밑 나지막한 슬레이트집에 살던 유년시절. 비온 다음날이면 눈뜨자마자 산으로 달려갔다. 그 무렵 뒷산과 앞개울은 내 놀이터였다. 비온 직후 촉촉이 젖은 산은 온갖 풀냄새, 이끼냄새들이 풍겼고, 꾀꼬리버섯이라 부르던 연노랑빛 버섯타래들이 나무 밑에 오종종 돋아난 풍경은 꽃처럼 예뻤다. 풀바구니에 가득 그것들을 따와 엄마에게 건네면 엄마는 칼국수 반죽을 시작하곤 하셨다. 꾀꼬리버섯이 들어간 칼국수를 나는 꾀꼬리국수라 불렀다. 버섯 향은 신비롭다. 꽃향기처럼 코로 맡아지는 게 아니라 목구멍으로 스며드는 듯한 냄새다. 후각, 미각, 촉각을 동시에 깨우는 버섯 향은 희미하고 담백한데 그 담백함이 외려 강렬하다. 가을이 오면 송이를 탐하는 내게 아버지가 일러주셨다.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란다.” 맛으로는 송이를 능가한다는 표고가 송이보다 가격이 싼 이유는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송이와 능이는 살아있는 나무에서 자라지만 표고는 죽은 나무에서 자라기 때문에 인간은 14세기 이전부터 표고를 재배해 향유해 왔다. 이 가을 느닷없이 표고 향을 떠올리는 이유는 표고의 향기가 죽은 나무로부터 길어 올려지는 탓이다. 마치 숙성시킨 사랑의 화학작용처럼 죽은 나무가 키워내는 생명의 향기. 나무에 흠집을 내어 1년간 썩히는 기다림이 필요한 표고는 딴 후에도 생것보다 햇빛에 잘 말린 게 감칠맛이 더 있다. 이 가을의 한 녘, 기다림 앞에, ‘표고의 정서’라고 문득 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