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4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4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은 왜 이런 글을 썼는가에 대한 저자의 주장, 독자의 읽기 과정, 사회적 합의라는 세 가지 아름다움의 일치다. 문제의식은 ‘새로운 소재 발굴’ 차원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생각이다. 그래서 문제의식은 글쓴이의 지식, 생각(이론)의 틀, 정치적 입장, 사회에 대한 애정 등 인간의 지적 능력을 집약한다.
문제의식은 당연히 새로운 것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않으면 남아 있던 발효물이 섞이게 된다. 그러면 어디서 새 부대를 구할 것인가. 새 그릇은 진실이 두려운 세상이 숨겨놓은 지식 생산의 방법이다. 찾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김찬호의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의 성취를 요약한다면 두 가지. 방법론과 내용이다. 슬픔이나 분노처럼 비교적 공감을 얻기 쉬운 심정과 달리, 모멸감은 드러내기 힘든 감정이다. 모멸감, 모욕은 “당했다”는 자기 해석이 동반되는 객관화하기 힘든 속성에다가 수치심과 자기혐오가 딸려온다.(7쪽) 이 책은 일상화된 모멸과 오만의 현실 그러나 연구되지 않은 분야에 대한 도전이다. 때문에 이런 책은 공동체가 직면한 지성의 모든 한계를 짐 지고 시작해야 한다.
또 하나는 현실의 필요성이다. 자의식은 높으나 자존감은 낮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지만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욕심은 끝이 없으나 노력은 엄두가 안 나고, 결국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모욕을 줌으로써 해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대에 이런 책만큼 절실한 책이 어디 있으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258쪽) 이 구절은 필자가 제시한 대안 중 하나인데,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안전한 관계”는 ‘믿을 수 없는 타인’과 ‘더럽고 험한 세상’을 넘어선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 담론은 친밀성을 독점함으로써 사회의 황폐함과 공모 관계를 형성해왔다. 안전한 관계는 이 두 극단의 영역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관계일 가능성이 있다.
이제까지 안전한 관계는 힐링과 이성애가 대신해왔다. 지금 힐링 언설은 안전한 관계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일시적인 위약(僞藥), 위약(違約)이다. 안전한 관계는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관계로, 제도의 편의성에 비하면 경쟁력이 형편없다. 그러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안전함은 고유하다. 교환, 양도, 대체되지 않는다. 안전은 온전함, 안정감과 다르다. 안정된 인간관계나 사회는 위험하다. 안정은 고정됨, 공안(公安)의 다른 표현이다.
호소하고 싶은 사연, 모순된 자기 행동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 몸에서 말을 내보내야만 생존이 가능한 상태를 수치심, 상대방에게 판단당하는 걱정에 시달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될까.
내가 택한 안전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대화인데, 이 방법은 정신이 분열될 위험이 있다. 혹은 신이나 절대자와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은 자신과의 대화다. 우리에겐 타인이 필요하다. 타인과의 상호 작용은 소중한 차원을 넘어 존재 양식과 생사의 문제다. 내게 다가오기와 거리두기를 반복하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로움과의 사투에 지친 그녀는 안전한 관계를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가 자살하기까지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삶에서 이해받고 싶은 마음만큼 간절한 것은 없다. 안전한 관계는 사람을 살게 하는 ‘구조’다.
이 책은 감정 연구를 촉발시킬 것이다. 다소 이견은 있다. “감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나라면 이렇게 쓸 것 같다. 몸=삶=감정=생각. 감정이 모든 지표다. 감정은 인지 작용, 생각이다. 때문에 감정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모멸감>과 더불어, 저자가 번역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의 부제는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인데, 나는 “왜 마음이 민주주의에서 중요한가”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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