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A는 B가 싫다고 한다. B가 항상 밝고 잘 웃기 때문이란다. 자신은 문제투성인데 B는 늘 평온하고 문제없이 사는 것 같아 맘 상한다는 것이다. 잘 웃는 사람이 그저 해맑아서, 천성이 낙관적이어서, 별 어려움 없이 살아서만은 아니기도 하다. 슬픔이 많아서, 그리움이 깊어서, 그늘 곁의 양지처럼 웃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로 웃음은 겨우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보기 위한 치료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사실 모든 웃음은 울음의 한쪽 얼굴을 닮아 있다. 고양이나 개의 눈에서도 슬픔과 기쁨이 단순하지 않음을 느끼는데 사람이야 오죽하겠나. 나는 알고 있다. B의 웃음엔 계산과 가면이 없다. 그녀는 그냥 웃는다. 이 바람 좀 느껴봐. 하늘 좀 봐. 새가 우네. 이 풀 좀 봐. 그런 말을 할 때 B는 웃는다. 잘 웃는 B는 잘 울기도 한다. 다만 그녀의 울음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흔히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괴로움을 자처한다. 나는 그냥 나고, ‘나로서’ 가장 아름다워질 수 있는 삶을 찾아 평생 방랑하는 여행자 혹은 탐험가일 뿐인 거다. 과도한 비교격의 사회는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제도교육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강화, 강요되는 비교격이 사람들의 마음에 감옥을 만든다. 끊임없이 나와 남을 비교하며 어른이 된 사람들은 개개인의 다름과 저마다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 옹졸하다. 수형자가 될 것인가 감옥 밖에서 자유로이 걸을 것인가. 일차적인 선택은 개인들의 몫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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