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은 ‘감정을 쥐어짜는 노동’에 가깝다. 백화점 노동잗르은 변변한 휴게실도 없이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윤운식 한겨레21 기자
[김선우의 빨강] 괴상한 높임말
“여기 아메리카노 나오셨구요. 거스름돈이세요. 시럽은 옆에 있으시구요.” 아이구야, 어딜 가든 매장에선 이런 괴상한 높임말들이 넘쳐난다. 아메리카노가 나오시고, 돈이시고, 시럽이 있으시고…. 이게 웬! 말 스트레스 심한 이런 ‘공해어’들이 퍼지는 일차 원인은 기업의 무식함이다. 서비스교육 시킨다며 고객 대하는 말을 저런 식으로 가르치는 거다. 이 무식한 교육의 원리는 이렇다. ‘소비자는 왕’이니 일단 무조건 높여드리는 게 장땡이라는 것. 그러나 생각해보라. 소비자는 왕인가? ‘왕’은 소비자라 불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다. 경어 체계가 복잡한 한국어라 일일이 따져 쓸 능력은 안 되고 높임처럼 들리는 말을 돈 쓰는 사람에게 마구 붙여대는 거다. 이런 괴상한 높임말을 들을 때 내가 몹시 불쾌한 것은 이 말들이 비문이어서만이 아니다. 말속에 교묘히 들어 있는 ‘비굴함’의 강제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종업원들에게 돈 앞에 일단 고개 숙여야 한다는 비굴함을 전제한다. 동시에 ‘소비자는 왕’이라는 공허한 기표를 무지하게 받아들인 ‘진상고객’을 만들어낸다.
진짜로 왕 대접 받으려는 사람들이 애꿎은 종업원들에게 과도한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사람’이 아니라 ‘물질, 상품, 돈’이 중심인 천박한 소비자본주의 속성이 비문 높임말에 은연중 드러나는 셈. 자정 좀 하자. 우선은 기업들이 이런 무식한 교육을 당장 멈추길 바란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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