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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마침 배운 적 없어서

등록 2014-09-23 18:35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출근길에 작은 연못가를 지난다. 추운 날 이른 아침, 그 연못에서 허우적대는 아이가 있다. 뛰어들어가 구하지 않으면 아이는 죽을 것 같다. 거기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하지만 며칠 전 산 새 신발이 더러워질 것이고 양복도 진흙투성이가 될 것이다. 보호자를 찾아 아이를 넘겨주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틀림없이 지각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지구촌의 빈곤 문제를 논할 때 하는 질문이다. 대개는 아이를 구하겠다고 대답한다. 신발은? 지각하는 것은? 그런 건 대수롭지 않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싱어는 실제 비슷한 상황에서 아이를 구하지 않은 경찰관이 있었다고 전한다. 아이는 죽었다. 경찰은 그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은 적 없어 들어가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현실에서 싱어의 이야기는 훨씬 더 구체적인 디테일을 입는다. 가령, 오늘 아침이 하필이면 직원 전체조회 일이고 지각을 하면 감점의 누적으로 직장에서 잘릴 수도 있는 상황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은 복잡한 덫으로 우리를 얽어맨다. 세상을 사는 이유, 윤리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리는 ‘배운 적 없어서 안 했다’라고 변명하는 ‘비인간 인간’이 되기 쉽다. 우리나라엔 지금 커피전문점만 2만여곳, 성인 1인당 하루 평균 두 잔을 마신다고 한다. 마침 그 커피 한잔 값이 없는 것처럼 누굴 외면한 적이 없는가 생각해보는 가을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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