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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퍼 날라지는 시

등록 2014-09-22 18:22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한 강연장에서 어떤 독자분이 내 시 ‘바늘귀 속의 두근거림’을 블로그에서 읽었고, 참 좋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시를 쓴 적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산문집에 나오는 산문의 일부였다. 누군가 옮겨 적은 그것을 블로그 주인장이 보고 시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등에 퍼 날라지는 시들에 대해서도 저작권 개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나는 이에 반대다. 인터넷 세계의 황무함을 개탄하는 시절 아닌가. 그러므로 더더욱 나는 내 시들이 인터넷 바다에 떠 있는 가녀린 별조각들처럼 어디선가 반짝거리고 있는 게 좋다.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저작권’이니 하는 ‘권리주장’과 애초에 거리가 있는 것이고, 그 거리가 역설적으로 시의 순수성을 지켜온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내 시들이 불특정 다수의 블로그나 카페를 장식하는 장식문패 정도가 될지라도, 여전히 시를 퍼 나르는 그 마음 자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여 시집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도 어느 날 문득 시를 만나는 기쁨이 깃들기를 바란다. 그런데 당부 하나: 가능한 한 원문이 훼손되지 않은 채 퍼 날라졌으면 좋겠다. 조사가 빠지거나 다르거나 행갈이 연갈이가 틀린 건 부지기수고 심지어 중요한 단어, 문장, 행, 연이 빠진 채 떠돌기도 하는 시들을 봐야 하는 일은 슬프다. 주격조사 ‘은는이가’ 중 어느 것을 쓸지, 보조사를 쓸지 말지를 놓고도 밤새 고민하는 게 시인이라는 종족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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