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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어느 등반가의 10조원

등록 2014-09-21 18:11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등반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개,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같은 소식을 들을 때 환호한 적이 없다. 왜 산의 정상을 ‘정복’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둘째 치고, 한 사람의 등정 성공을 위해 필요한 수많은 셰르파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대의 고산 등정이란 레포츠산업과 연결된 일종의 비즈니스가 되었다. 정상에 오른 등반가에게는 명예와 여러 형태의 물질적 후원이 따른다. 그러면 셰르파는? 셰르파는 짐을 나르고 수당을 받는 노동자다. 함께 산에 오르는데, 등반가의 노동은 ‘꿈의 실현’을 위한 것이고, 셰르파의 노동은 생활을 위한 것인 셈이다. 임금노동자에 기대어 있는 누군가의 꿈과 모험, 나는 이것이 불편하다. 등반가의 도전이 진짜 멋진 것이 되려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하고, 그 마음은 현실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셰르파의 임금이 올라야 한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는 동반자 관계의 초석이고, 그에 따라 셰르파와 그 가족이 직업에 보람과 자존감을 느끼게 될 때, 신성한 산의 등정이라는 멋진 모험이 진짜로 시작되는 것 아닐까.

현대차가 서울 삼성동 한전터 인수에 10조원을 베팅했다. 천문학적인 돈이다. 그 의사결정을 정몽구 회장이 직접 했다고 한다. 나는 왠지 그룹 총수가 고산에 깃발을 꽂은 모습이 떠오르고, 현대차와 협력업체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들이 셰르파처럼 떠올라 잠을 설친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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