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좋아하는 게 많을수록 삶은 풍성해지고 생활의 만족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좋아하는 상태 자체로 그냥 행복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사랑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존재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도움과 위로와 힘이 되길 원한다. 이것이 내가 아는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필연적으로 이타적이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데, 인간은 그 이상을 원한다. 바로 이 지점, 별것 없는 인간이 가진 뜻밖의 위대한 속성이다. 사랑의 완성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게 나를 주는 도정이다. 내가 가진 뭔가가 그를 위해 사용되고 그가 행복해지고 나와 더불어 꽃피길 바라는 상태다. 끌림과 매혹은 경험하고 나면 해갈되지만 사랑은 경험을 통해 더욱 높은 밀도로 성장하고 나아간다. 진짜 사랑은 본질적으로 진보적이다. 나를 해체할 각오로 너에게 다가가는 것이며, 자발적으로 서로를 해체해 재구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랑받으려고 떼쓰지 말자. 잘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능동성이 진짜 기쁨에 가깝다. 주고받는 계산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관계는 결혼 정도가 될 것인데, 제도적 결혼은 사랑의 상태와는 범주가 다른 얘기다. 평생 도전하고 수준을 높여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영예로운 과업, 그게 사랑이다. 청춘이여 가을이다. 호시탐탐 사랑하소서.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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