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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무엇을 먹을까?

등록 2014-08-29 20:14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숫타니파타>, 법정 옮김, 이레, 2005
나는 무엇을 먹을까?

나는 어디서 먹을까?

어젯밤 나는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오늘 밤 나는 어디서 잘 것인가?

집을 버리고 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네 가지 걱정을 극복하라.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의 일부다.(331쪽) 이 네 가지는 나를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하는 고민일 것이다. 나는 “집을 버리고 진리를 배우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섭식과 수면에 문제가 많아 건강이 좋지 않다. 이런 근심이 마땅한 평범한 중생이다. 이런 걱정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수행도 선민의 일이다.

게다가 위 글귀는 먹고 자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세상이다. 타인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잠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의 노동은 드러나 있지 않다. 여남 불문, 일상적으로 가사노동에 매여 있지 않은 사람들은 우렁각시가 의식주 관리를 저절로 해주는 줄 안다. 한여름 땀범벅인 채 부엌에서 세 끼니 준비가 심란한 이들은 알리라. 혁명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세상이라는 것을.

한편, 먹고 자는 네 가지를 극복했다기보다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먹는 사람, 먹을 것을 만드는 사람, 먹기를 멈춘 사람이 있다. 단식. 먹을 것을 끊는 것은 생의 새로운 단계다. 생리학적, 실제적, 상징적으로 먹지 않음과 잠들지 않음은 반사(半死), 유사 죽음 상태를 의미한다. 진리를 배우는 사람이 집을 버려야 한다면, 진리를 전하는 사람은 몸을 내놓아야 하나 보다. 먹고 자는 것이 ‘일상’이고 이에 마음 쓰지 않는 것이 ‘수행’이라면, 단식은 수행을 넘어 다른 궤도로의 진입이다.

면벽(面壁)의 원리와 같지 않을까. 면벽이 벽을 넘어 문을 여는 것처럼 먹기를 멈추는 것 역시 새로운 장(章/場)을 여는 것이리라. 이런 이분법이 불편하긴 하지만 개인적 행위로서 ‘단식’이 있고 사회적 의미를 공유하는 ‘단식 투쟁’이 있다. 그러나 ‘단식 투쟁’은 동어 반복이다. 먹고 자는 걱정을 극복하라는 부처의 말씀에 의하면, 단식은 극복도 걷어찬 그 자체로 투쟁이다. 먹을 것과 잘 곳에 연연하지 않고 ‘집’을 버리는 삶이 수행자의 일상이라면, 단식은 그 일상을 떠나려는 시도다.

<숫타니파타>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는 수행자는, 세상 모든 것이 다 덧없다는 것을 알아 미움에서 벗어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세월호 피해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의 단식을 “프로파간다”, “정치 입문”이라는 이들에게 쉽고 자명한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단식은 수행의 절정, 이미 정치다. 그들의 발상은 정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정치에 대한 무시다. 어떤 이의 무식은 아픔이지만, 어떤 이의 무지는 모욕과 사회악을 낳는다. 무엇보다 인간성의 후퇴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출전으로 유명한 <숫타니파타>는 불교의 중요한 경전으로 말의 묶음집이라는 뜻. <숫타(經)니파타(集)>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간추려 산문 형태로 묶은 책이다. 시중에 10여종의 번역본과 해석집이 나와 있다.

몸을 긴장시키는 문장이 또 있다. “그대에게 최상의 경지를 말하리라. 음식을 얻을 때에는 칼날의 비유를 생각하라.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비우라.”(247쪽) 법정의 주석에 의하면 면도날에 묻은 꿀을 핥을 때는 혀가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 시주 물건을 사용할 때 번뇌의 더럽힘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세월호 이후 망언 시리즈는 책으로 묶어도 될 판이다. 이들의 혀가 면도날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주를 너무 받아서 혀를 많이 베인 것인가. 그래서 막말이 막 나오는 것일까. 이들 입안의 피비린내가 세상에 진동한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이에게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제발 자기 악취는 스스로 삼키기를, 밖으로 뱉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도 진실도 혹독하다.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더 들어야 하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통과 상처를 딛고서야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날 것인가.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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