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방문한 꽃동네 들머리에 세워진 비석 문구를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맙소사. 장애인, 노숙인 등 수천명이 살고 있는 국내 최대의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장애인에게 저토록 모욕적인 문구를 당당하게 내걸 수 있다니. 꽃동네는 장애인 ‘복지시설’이 아니라 ‘수용시설’이란 말인가?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을 ‘수용’해 바깥세상과 단절시키고 ‘얻어먹을 수만 있어도 은총’이라 여기며 살아가도록 종용하는 이 시설이 연간 300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과 80만명에 이르는 후원자들의 후원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잘 알려진 대로, 설립자 오웅진 신부는 이 ‘시설’ 덕분에 부동산실명제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 부정 축재 등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부자가 되었다. 국가의 장애인복지 예산이 단순히 ‘수용시설’ 지원에 쓰이는 한, ‘시설’을 통해 돈벌이를 꾀하려는 자들의 금고를 불려 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참에 꽃동네 쪽은 교황이 걸었던 길과 머문 방을 성지화해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단다.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야 한다고 진심을 다해 호소한 교황을 천박한 돈벌이 도구로 전락시키는 저 ‘비즈니스 마인드’ 어디에서 장애인을 위한 진심이 느껴지는가? 장애인에게 필요한 복지의 핵심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와 존엄, 행복을 추구하는 ‘자립생활’이지 ‘수용생활’이 아니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