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예술’이라는 찬사가 적절한 만화들이 있다. 에마뉘엘 르파주의 르포르타주 만화 <체르노빌의 봄>도 그렇다. 원전 사고 22년 후 직접 체르노빌로 간 작가가 핍진한 현장성과 예술성으로 구현한 <체르노빌의 봄>은 국가가 은폐한 진실을 찾아내는 끈질긴 질문이 곧 인간성 회복의 여정임을 보여준다. 그러니 부천국제만화축제 초청으로 한국에 온 르파주가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과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간 것도 자연스러운 끌림이리라. 그는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한 채 진행되는 거리 미사를 보고 스케치를 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싸움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싸움의 형식”에 관심을 가지며 ‘예술가의 촉’이 느낀 바를 이렇게 전했다. “발레나 예술적인 퍼포먼스처럼 보였습니다. 십분 만에 경찰이 와서 사람들을 들어내고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서 자리를 잡고요, 그리고 사람들은 노래를 하고 춤을 춥니다. 마치 ‘생명을 가진 편은 우리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요.” 그렇다. ‘생명의 느낌’, ‘자신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의 연약하지만 강한 힘. 이것이 평화의 힘이지! 길 끝에 도달해야 만나는 목표가 아니라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 그러므로 평화는 더디어 보여도 더디지 않다. 색색의 조각보를 짓듯이 그렇게 한 땀 한 땀 지은 평화의 힘으로 저 흉물스러운 전쟁기지를 통째 덮어버리는 날이 올 것이다. 강정, 수많은 강정, 거기에 깃들 평화의 봄!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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