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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12, 12

등록 2014-08-04 18:35

이상과 김유정은 ‘절친’이었다. 둘 모두 가난했고 폐결핵을 앓았다. 이상은 난해시라는 항의로 ‘오감도’ 연재를 중단당하고, 다방 경영에도 실패하고, 연인 금홍과도 결별한 어느 날 김유정을 찾아가 “함께 죽자”고 했다. 김유정은 뼈가 앙상한 가슴을 풀어헤치고 “아직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후 이상은 도쿄(동경)로 갔고, 폐병과 싸우며 집필을 계속한 김유정은 죽기 십여일 전, 문우 안회남에게 편지를 써 탐정소설을 번역해 보낼 테니 돈을 좀 만들어 달라 했다. “닭 삼십마리를 고아 먹고, 살모사와 구렁이를 십여마리 달여 먹겠다”고. 아직 쓰고 싶은 것이 많았던 청년 작가의 생에의 갈구가 고스란하다. 답장을 받기도 전에 유정은 세상을 떠났다. 이상은 1937년 사상불온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지만 폐병이 악화되어 도쿄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한다. 유정이 세상을 뜬 지 20일 만이다. 이상은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에 장편소설 ‘12월12일’을 연재한 적이 있다. 일본인 최고위층의 정책논설이 함께 실리는 잡지였다. 그는 작품에 숫자 상징을 자주 사용했는데 눈치챘겠지만, ‘12, 12’는 강하게 발음하면 욕이 된다. 소설 속에서 12월12일은 주인공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고 조선으로 돌아오는 날이며 죽음을 맞는 날이기도 하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라는 주인공의 절규와 식민지 청년들이 떠오르는 날들이다. 왜일까?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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