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흔히 ‘민생’과 ‘서민’을 말한다. 두루 쓰이지만 나는 이 말들이 불편하다. 뭔가 ‘퉁치는’ 느낌 때문이다. 백성 ‘민(民)’ 자의 봉건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말들은 계급 불평등을 교묘하게 숨긴다. 고소득층도 저소득층도 자본가도 노동자도 ‘백성’이다. 그런데 왜 현실에서 민생정치는 자본력을 가진 계급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용산, 4대강, 쌍용차, 강정 문제들에 걸쳐져 있는 정치라는 것이 결국 무소불위 자본의 논리이며 공권력의 방식 아닌가. 이러한 정치권력이 속내를 숨기고 두루뭉술하게 남발하는 말들이 바로 ‘서민의 살림살이’ 운운이다. 선거 때가 되면 별안간 시장통에서 어묵을 찍어 먹고 목도리를 둘러주는 웃지 못할 정치인들의 코미디가 여전히 반복되는 것은 ‘서민’의 정서가 너무 ‘서민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당대우를 받으면서도 꾹 참고 좋은 게 좋은 거지 사는 ‘착한 서민’일랑 이제 그만 안녕하자. 방송에서 ‘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것을 자체검열하며 ‘근로자’라 바꿔 불러야 안심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계급 불평등을 숨겨야 할 필요 때문일 터. 우리는 언제쯤 이 모호하고 해묵은 불평등의 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저소득층, 빈민, 노동자, 농민 등 ‘서민’으로 퉁쳐지는 모든 주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해고노동자 출신의 국회의원 후보가 등장한 이번 보선을 내가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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