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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수련을 깨우는 법

등록 2014-07-22 18:33

여름이 좋은 이유는 수련 때문이다. 물 곁을 좋아하는 나는 한때 집 안에 돌확을 놓고 수련을 기른 적이 있다. 가까이서 처음 본 수련의 개화를 기억한다. 물의 우주를 가르며 뻗어 올린 듯한 줄기 끝에서 마치 행성 하나가 탄생한 것처럼 꽃봉오리가 맺히는 것을 볼 때의 환희. 이제나저제나 하는 기다림 끝에 꽃봉오리가 활짝 열리고 그날로부터 5일간 수련은 매일 아침 꽃잎을 열고 저녁이면 꽃잎을 닫았다.

수련을 흔히 물 수(水) 자를 쓰는 연(蓮)으로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수련은 잠잘 수(睡) 자를 쓴다. 물의 여신 님프(Nymph)에서 유래한 님파이아(Nymphaea)가 수련의 속명(屬名)이다. 잠자는 연은 햇빛이 맑고 화사하게 몸에 닿아야 꽃잎을 연다. 수련 줄기가 물 밖으로 나올 때에도 빛을 찾아서다. 수련의 생리는 세상을 향한 만개의 열망과 고독한 물속의 잠, 두 가지 경향성을 한 몸에 지녔다. 잠자는 수련을 물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것은 강렬하고 맑은 빛의 요청뿐이다. 생애를 걸 만한 빛의 요구가 아니라면 차라리 물속의 고독과 정적을 선호하며 세상일 따위 관심 없다는 듯 잠들어 있는 수련이야말로 수련을 수련답게 하는 가장 큰 매혹이다.

지금 나는 수련이 피기를 기다린다. 진흙탕 같은 세상. 아름다운 수련이 물을 가르며 꽃대를 밀고 올라오길. 수련의 능동성을 두드려 깨울 강력하고 맑은 빛무리들을. 지금 나는, 우리는, 어떤 빛을 만들어 수련을 깨울 수 있을까.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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