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는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표류하는 기미가 역력하다. ‘세월호 전과 후’라는 표현이 흔해질 만큼 전 국민의 일상을 뿌리째 뒤흔든 슬픔과 공분의 시간. 이미 물속으로 반 넘어 가라앉고 있는 ‘대한민국호’를 끌어올릴 수 있는 희망의 마지노선이 여기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완전한 특별법 제정! 이것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희생자 가족들은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게 뭔가. 살아도 산 게 아닌 지옥을 견디는 유가족들이 국회 앞에서 노숙을 해야 하고, 땡볕 내리쬐는 거리에서 단식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다니. 십자가를 메고 걸어야 하는 것은 정치인과 사고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할 일인데 유가족과 단원고 학생들이 그 짐을 지고 있다. 여당의 기회주의와 몰상식이 도를 넘는다 치자. 안철수, 김한길씨는 대체 뭐 하자는 야당 대표들인가. 제 잇속 계산에 바쁜 잔머리와 상대적 무력함을 가장한 간보기, 신물 난다.
시신 한 구가 더 수습되었다는 소식에 “이제 곧 100일이다”라는 고통스러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글을 쓰는 지금, 광화문광장에서 지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단식 중인 유가족 한분이 쓰러지셨다고 한다. 직시하자. 우리는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일 뿐이다. ‘요행히 살아남은 자’일 뿐이다. 지금 같은 대한민국이라면 다음 죽음은 언제든 나와 내 가족, 친구들 차례가 될 것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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