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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상처 입히는 기쁨

등록 2014-07-18 19:31수정 2014-07-18 21:18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이순애 엮음, 이홍락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8
세월호 사건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승무원 등 몇몇 관계자에 대한 사법 처리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비극의 원인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인과론적 사고는 ‘이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긴데, 그러기엔 ‘만일’에 대한 가정이 너무 많다. 해경의 대응부터 ‘관피아’, 신자유주의 체제의 필연, “우리 모두의 잘못”… 이런 식의 논의라면 원인을 많이 나열할수록 답은 완벽해진다. 그러니 애초부터 ‘세월호의 책임’은 우문일지 모른다.

‘세월호’가 교통사고라는 이들에 이어 AI(조류 인플루엔자) 사태라고 말한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구 병), “대필은 교육 차원”이라는 교육부 장관(사회부총리) 후보자, 청문회 정회 도중 폭탄주를 마신 장관 후보자(이 글은 대통령의 결정 전에 쓰여졌다). 특히 표절과 대필, 근무 중 학위 취득(혹은 구매도 드문 경우가 아니다)은 관례 같다. 내 기억엔 노무현 정부에서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학자 출신 여부,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이 혐의에서 자유로웠던 이는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엔 이런 현상에 무심했었다. 원래 그런 사람들, 나랑 상관없는 특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젠 이런 사람들이 티브이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출몰하고 있어서다. 나도 아는 이들의 비리와 이에 대한 지인들의 비판, 울화통, 좌절이 수시로 벌어진다.

실력은 없고 불성실한데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타입의 “출세에 미친” 인재(人災)들이 인재(人才) 행세를 하고 각자 분야에서 활약하다가 공적인 문제가 될 때(예를 들어 청문회가 열릴 때) 그들의 태도. 자기 인식 불능과 뻔뻔스러움, 이것이 통하지 않을 때 피해자를 협박하고 미디어엔 눈물을 보인다. 절망적인 것은 개인차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한국 사회 자체고, 내가 생각하는 ‘세월호의 원인’이다.

현대 일본 최후의 사상가라고 불리는 후지타 쇼조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은 우리의 정신 붕괴와 외로움을 호소할 수 있는 ‘선생님’ 같은 책이다. 젊은 시절 후지타는 총명하고 독특한 지식인이었다. 이후 1960년대 안보 반대 투쟁에 참여하면서부터 고도성장기의 일본 사회에 절망하게 된다. 이 책의 편집자인 재일조선인 출신의 지식인(이순애)의 소개가 정확하고 멋지다. “그 절망이 불러오는 몰락을 살아낸 기록, 압도적인 시류와 고투 끝에 생긴 상처를 새긴 글”.

‘전체주의’ 제목이 주는 선입견은 독서에 방해가 된다. 왠지 옛날이야기 같고 우리 사회에서는 전체주의와 개인주의를 대립하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사실은 같다) 이 책은 마거릿 대처의 끔찍한 단언, “경제는 방식일 뿐 목적은 영혼을 바꾸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다. 문장은 거대하고 빽빽한 삼림 같다. 깊고 넓은데도 낱낱이 충실하다. 내려놓을 글귀가 한 줄도 없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성공을 추구하는 이들이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기쁨”(43쪽)은 ‘세월호’ 분석에 참고가 된다. ‘세월호’는 이 기쁨을 맘껏 휘두르는 이들과 이런 능력을 부러워하는 사람들 때문 아닐까. 그래도 일본 사회는 제대로 된 충성과 경쟁이 있다. 우리는 능력 없고 부패한 자의 대담함이 곳곳에서 칼과 돈, 웃음을 팔고 있다. 박경리의 시처럼(‘견딜 수 없는 것’, 1988년) “劍이 되고 화살이 되는/ 그 快樂의 눈동자/ 견딜 수가 없다”(원문은 “없었다”).

상처 입히는 기쁨은 경쟁, 승리, 유명 숭배 시대의 인간관계 방식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기쁨인 자기 극복이 아니라 성공을 향한 맹렬한 욕망에 방해되는 모든 사회적 연계를 토막 내는 기쁨이다. 이 즐거움은 주도면밀하지만 보편적 생활양식으로 인식되어 자연스럽게 보인다. 따라서 자각이 없다. 자각이 없기 때문에 수치심 없는 삶이 쏟아지는 것이다.

사족-범법 행위를 했으면 청문회 등장은 고사하고 형사 처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사과도 뉴스도 매우 이상한 사회다. “○○○ 후보자는 사과드린다며 몸을 낮췄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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