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익어가는’ 계절이다. 재보궐선거가 끝날 때까지 또 얼마나 염증 내며 ‘저놈의 정치판’을 지켜봐야 하나 내심 걱정되던 참에 갑자기 온몸이 상큼해진다. 평택을 선거구에 쌍용차 해고자 김득중씨가 출마한다는 단비 같은 소식 때문이다. 해고노동자가 자신이 해고된 회사가 있는 바로 그 지역에 출마한다! ‘진보단일후보’ 뭐 이런 수식이 이름 앞에 붙어 있지만, 아유, 한국 사회에서 진보고 단일이고 이런 말은 이미 털 빠진 민살처럼 후줄근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노동자 후보’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운동 기간 여야가 한목소리로 약속했던 쌍용차 청문회는 결국 공허한 말뿐으로 꿀꺽 사라졌다. ‘정치판 종사자’들이 노동자의 입장을 몸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꾼들에게 백날 말해봐야 그들에겐 모든 것이 정치권력을 위한 도구가 될 뿐이다. 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자가 풀겠다는 이 각오와 출발이야말로 한국 사회 대의민주주의의 헛헛한 실상을 간파하고 그 현장을 혁명적으로 바꿔가는 방법의 하나다. 당선 불가능이 뻔한데 뭣하러 힘 빼느냐는 식의 ‘의식공작’이 우리를 부자유하게 해선 안 된다. 결과에 상관없이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근육을 키우는 일이니까.
게다가 무소속 노동자후보 김득중씨와 맞붙을 사람이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노조 탄압을 진두지휘한 새누리당 임태희씨다. 대의민주주의에 심드렁한 나 같은 사람이 선거에서 찍고 싶은 사람 때문에 평택으로 이사하고 싶은 이런 마음, 들어는 봤나.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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