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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달나라 영웅전

등록 2014-06-24 18:26

한강에 달이 빠졌다는 소문이 돈다. 강에 빠진 달을 건져 올리면 큰돈이 될 거라는 찌라시가 돈다. 하나둘 영웅들이 나타난다. 내가 꺼내겠다. 나만이 꺼낼 수 있다. 웅변한다. 공약한다. 돈을 풀고 뉴스를 조작하고 유세를 떤다. 영웅이 달을 건지면 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더 넓은 땅, 일종의 부동산이 생기고, 달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퍼져간다. 영웅들의 공약은 죄다 비슷하다. 남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해주겠다. 더 편리하게 살게 해주겠다. 더 성공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존재의 근원가치에 대해 질문하는 자는 영웅이 되지 못한다. 행복의 질에 대해 묻는 영웅은 도래하기 전이거나 영영 오지 않는다.

한강에 달이 빠졌다는 소문이 돈다. 물속의 달이 아름다워 손 내미는 사람이 있다. 시인은 수면 가까이 내려가 물에 빠진 달빛을 읽어내고, 무한히 생성중인 무수한 달이 인간의 마음에 뜨는 걸 본다. 시인은 달을 노래한다. 물에 빠진 달을 보존한다. 그것이 시인의 한계이며 시인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영웅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동에 의해 보존되어 왔다. 탐내야 하는 것은 물에 비친 달의 허상이 아니라 그 달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행복의 감각과 수준이다. 정치판이여, 시인들에게 가서 감동을 배우시길.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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