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온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의 초청 강연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일흔살이 넘은 ‘어른사람’인 벨치히는 ‘어린사람’의 싱싱한 감각을 가진 노인이었다. 그의 이야기들은 ‘잘 놀아본’ 아이디어들로 반짝거렸다. 그는 한국의 놀이터들이 죄다 불량품이라고 한다. 여름 날씨가 더운데 놀이기구들이 죄다 플라스틱인 것도 이상하고, 놀이터에 그늘 하나 없이 어딜 가나 중앙에 비슷비슷한 놀이기구가 똑같이 들어서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한국의 놀이터가 이처럼 천편일률적인 이유를 그는 ‘실용성을 앞세운 미국 놀이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적인 공간들은 나무, 돌 등 자연물을 잘 이용하는데 놀이터에도 이런 양식이 적용되면 좋겠다’고 당부하는 이 할아버지의 말을 건축업자들이 귀담아들으면 좋을 텐데!
벨치히에게 한 시민이 물었다. ‘노인 세대와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놀이터가 가능하지 않을까? 벨치히는 정색을 하며 깐깐하게 답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아이들과 있으면 늘 가르치려고 듭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도 속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놀 때는 어른 없이 아이들끼리 놀아야 합니다.” 아, 맞다. 나도 어렸을 때 ‘우리’만의 비밀동굴을 만들어 놀곤 했지! 벨치히의 대답은 특히 한국의 정서를 고려할 때 너무나 적확하지 않은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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