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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소녀아리랑

등록 2014-06-15 18:12

얼마 전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님이 별세하셨다. 오래전 어느 봄날 해인사에서 그분을 뵌 적 있다. 산벚꽃 흐드러진 봄날이었고 함께 식사를 했다. 분분한 산벚꽃 나무들을 아득히 바라보던 할머니가 문득 그랬다. “멋지고 멋지고 멋지게 살아서, 우리 살아온 끔찍한 세월 억울하지 않게 해주라.” 멋지고 멋지고 멋지게. 세 번이나 반복하며 노래하듯 읊조리던 그 억양이 기억에 고스란하다. 그런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분명 예술인이 되셨을 분이었다. 산벚꽃 뽀얗게 흔들리던 봄, 가만가만 부르던 할머니의 아리랑이 오래도록 아팠다. 그리고 지금 그 노랫소리에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망언이 겹쳐 들린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망언은 끔찍하지만, 일본 쪽에서야 그런 망언에 박수치는 자들이 왜 없겠는가. 문제는 한국의 총리 후보자라는 사람이 그 줄에 서 있다는 것이니, 참극이 따로 없다. 일본 극우세력들이 환호하며 반기는 한국의 총리 후보자를 두고 일본도 중국도 내심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런 자가 총리 후보자가 되는 걸 보면 한국은 식민지 근성이 골수에 박힌 나라 아냐?’라고. “봉숭아꽃 꽃잎 따서 손톱 곱게 물들이던, 내 어릴 적 열두 살 그 꿈은 어디 갔나. 내 나라 빼앗겨 이 내 몸도 빼앗겼네. 타국만리 끌려가 밤낮없이 짓밟혔네.” 배춘희 할머님의 소녀아리랑이 중천에 맴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분 가운데 이제 생존자는 54분 남으셨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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