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이 제목, 절대 잊지 말라”, 우석훈 씀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 2012 행복한 책꽂이>
시사IN, 2012
“이 제목, 절대 잊지 말라”, 우석훈 씀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 2012 행복한 책꽂이>
시사IN, 2012
정혜윤의 쌍용자동차 이야기 <그의 슬픔과 기쁨>을 쓰려고 했다. 훌륭한 책이다. 저자가 부러웠다. 그러나 처음 등장하는 도장(塗裝) 노동자의 사연부터 분노가 몰려왔다. 나는 30대 초반 그와 비슷한 “이해할 수 없는 해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 사건은 이후 내 삶에 연속선을 이루면서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머릿속에 당시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이 집결했다.
이처럼 읽는 이의 상황은 책 고르기, 읽기에 결정적이다. 4월16일 이후 내가 쓴 모든 글의 주제는 세월호 사건이었다. 계속되는 놀라움, 상황 파악이 안 될 만큼의 어이없음, 우울. 나는 지쳤다. 그러니 쌍용차 이야기를 어떻게 편안히 읽겠는가. 기운을 차려 다시 도전할 것이다.
우석훈의 많은 책 중에서 10매 분량의 글에 대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은 주간지 <시사인>의 2012년 12월호 별책부록이다. 우리 사회 ‘독서 리더’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 서평을 모았다. 출판 전문가들이 꼽은 책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질문과 문장을 두루 갖춘 책은 ‘민족의 지도자’만큼이나 나오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책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쓴 사람이나 관심 있는 이들에겐 삶의 의욕을 좌우할 만한 일이다. ‘부키’는 <아까운 책> 시리즈를 꾸준히 낸 사실만으로도 사랑받아야 할 출판사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내용과 의미는 ‘베스트’인 책을 모은 것이다. 선정된 책에 대한 해설, 저자의 다른 저서와 참고문헌 소개까지 보통 의지와 정성이 아니면 만들기 어려운 책이다.
우석훈은 솔직하고 정확하게 썼다. “한 권을 선정하는 것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 제일 쉬운 선택은 외국 책을 고르는 일이다. 양심적인 선택은 아니다.”(25쪽) 그러면서 그는 “이 제목, 절대 잊지 말라”며 과감하게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한 권의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 지면의 경우 오해와 논란이 될 만한 책은 다루지 않는다. 나의 어설픈 정의감과 결벽증에 소심한 성격까지 겹쳐 지인과 국내 필자가 쓴 책, 여성학 책이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 사람 책은 문학 작품에 국한된다. 번역서와 ‘고전’이 욕도 덜 먹고 쓰기도 편하다. 나는 비겁하다. 좋아하는 책, 읽는 책, 서평 쓰는 책. 이 세 종류가 따로 논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로컬에서 생산된 책의 사고방식과 문제제기가 주된 토론 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줄(학연), 과대광고, 체면 중시 풍토 등 특유의 한국 문화 때문에 논쟁 자체가 형성되기 힘들다. 지식 생산과 관련한 논쟁에서 번역의 비중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그조차 맥락성보다는 오역 여부가 주를 이룬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집단은 입법, 사법, 행정부가 아니라 출판 산업 종사자라고 생각한다. 편집자, 책을 다루는 기자, 출판평론가의 임무는 막중하다. 이들의 안목-가치관, 지식, 시계(視界)-에 따라 사회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독자층이 다양하므로 모든 책이 심각할 수 없고 이런 책도 저런 책도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거짓말! 실은 다양하지 않은 ‘다양한’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약자의 시각을 옹호하거나 기존의 사유 방식에 대항하는 책은 다양성이 아니라 특수한 책으로 취급된다.
나는 통념(이데올로기)일 뿐인데 지당한 말씀으로 포장된, 무난한 글이 제일 싫다. 한마디 외침이라도 의미가 없다면 언어가 아니다. 광범위한 현실이지만 가시화되기 힘든 의제나 궤도 밖의 사유는, “어렵다”는 표현으로 미화되지만 실제로는 불쾌하다는 얘기다. 이 권력 투쟁 과정에서 책을 선택하는 위치에 있는 이의 역할은 중차대할 수밖에 없다.
“여러 결핍 모형을 기계적으로 모아 결핍을 해소하려는 방식이 융합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융합은 서로 다른 시선의 만남입니다.”(윤태웅, <한겨레> 인터넷판 2014년 3월31일치) 이런 문장과 독자의 만남이 가능한 것은 글쓴이가 아니라 글을 볼 줄 아는 사람들 덕분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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