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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고리호

등록 2014-06-01 18:18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봄흙 냄새가 여름흙 냄새로 바뀌었다. 얼었던 겨울흙이 풀리며 따스하게 부풀어 오르는 봄들판은 말할 수 없이 관능적이다. 부풀어 오른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위한 숨구멍을 많이 가진다는 것. 그리고 봄흙이 여름흙이 된다는 것은 그 숨구멍들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본격적으로 살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와글거리는 여름흙의 들판에서 나는 불안하다. 이 땅의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될 또다른 세월호가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력이라는 말은 핵이라는 말의 공포감을 교묘히 완화시킨다. 노후한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30년 설계수명이 이미 끝났지만 어쩐 일인지 2017년까지 가동이 연장되었다. 잦은 고장사고, 은폐, 뇌물비리, 불량부품 사용, 운영관리의 폐쇄적 인맥구조 등이 세월호와 많이 닮았다. 만약 고리호가 침몰하면 직접피해 규모는 300만명. 사람만 희생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의식주를 기대고 사는 모든 바탕이 괴멸한다. 설계수명이 만료되었지만 여전히 가동되고 있는 월성 1호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23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그중 고리와 월성의 것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계절마다 다르게 풍기는 흙냄새를 느끼며 살고픈 소박한 바람조차 곧 끝장날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떨쳐지지 않는다. 이 예감이 ‘잠수함 속의 토끼’를 자처하는 한 시인의 과민함으로 그치길 바라지만, 과연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게 아무 일도 아닌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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