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상용하는 욕 중엔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욕이 많다. “씨발!” 이 욕은 감정을 터뜨려 울화를 해소하는 데 유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년소녀들이 이런 욕을 습관적으로 하는 걸 보는 일은 곤혹스럽고 슬프다. ‘얘들아,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어야 하는 소중한 행위야. 그런 행위를 왜 ‘그따위’들에 연결시키니?’ 신호등 앞에서 나는 속말을 한다.
동물에 빗댄 욕도 마찬가지다. ‘개새끼’는 물론 개 같은, 돼지 같은, 뱀 같은, 여우 같은, 이런 비유들을 들을 때마다 ‘개 돼지가 무슨 죄야?’ 싶다. 이유 없이 인간의 혀끝에 불려와 곤욕을 당하는 동물들에게 미안하다. ‘개만도 못하다’라는 식은 좀 낫다. 비교격의 폭력이 있을지라도 개만도 못한 짓을 하는 상대에 대한 일말의 언어적 응징이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런데 ‘개새끼!’ ‘개 같은’ 식의 표현은 직유가 갖는 가장 나쁜 예에 해당하는 듯하다. 이런 말은 대상의 고유성을 폭력적으로 훼손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하등하고 비루한 존재 취급을 당하는 개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이런 욕들은 매우 불편할 터이다.
애꿎은 동물들을 끌어들일 필요 없이 그렇게 살면 ‘욕 자체’가 된다는 걸 보여주는 인간들이 이미 많지 않은가. 히틀러 같은 놈! 아이히만새끼! 이런 이름들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면,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도 이미 검증된 ‘욕 자체’들은 많다. 이 ○○○ 같은 놈!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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