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이상고온으로 목련과 벚꽃이 한꺼번에 피었다. 이른바 ‘벚꽃 엔딩’도 보름쯤 당겨졌다. 서둘러 가버리려는 꽃의 계절이 더욱 아쉽다. 본디 봄을 즐기는 ‘상춘’(賞春)은 으레 봄이 떠나감을 아파하는 ‘상춘’(傷春)으로 이어지고, 상춘의 노래에는 일쑤 청춘의 아픔이 겹쳐진다.
주관적이겠지만, 봄의 상실감을 그린 최고의 절창은, 청나라 작가 조설근의 <홍루몽>(紅樓夢)에서 불우한 주인공 임대옥이 읊는 기괴한 시 ‘꽃을 장사지내는 노래’(葬花吟)이다. “활짝 핀 꽃은 사람들이 반기지만 떨어진 꽃잎을 누가 찾겠는가/ 시름에 겨워 섬돌 앞에서 죽은 꽃잎을 묻네/ (…)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는다면/ 흩날리는 꽃잎 따라 하늘 끝까지 갈 텐데/ 하늘 끝 어디가 꽃들의 무덤이오?/ 비단 주머니에 농염한 꽃의 주검을 담느니/ 깨끗한 흙으로 시대의 풍류를 묻노라/ 고결하게 와서 고결하게 가노니/ 더럽혀져 도랑에 버림받는 걸 못 견디겠노라/ (…) 죽은 꽃 묻어주는 날 바보라 비웃지만/ 나를 묻어줄 이는 누구일까/ 깨어진 봄빛과 날리는 꽃잎을 보라/ 바로 홍안의 청춘이 죽어가는 시간/ 하루아침에 봄날은 가고 청춘도 늙을지니/ 꽃도 가고 사람도 가고 둘 다 함께 잊히리라.” 이건 세상의 모진 광풍에 흩어져간, 못다 핀 청춘들을 위한 레퀴엠이다.
요절한 홍콩 가수 메이옌팡의 ‘여인 꽃’(女人花)은 유행가이지만 ‘꽃을 장사지내는 노래’만큼 절절한 청춘의 만가이다. “사랑한 뒤에야 정이 무거운 줄 알고/ 취한 뒤에야 술이 독한 줄 아노라/ 꽃 피었다 꽃 지니 모든 게 텅 비었을 뿐”(愛過知情重/ 醉過知酒濃/ 花開花謝總是空).
꽃이 지는 상실감에 너무 젖지는 말자. 심지어 봄에 꽃을 못 피우는 나무도 있지 않던가. 당나라 시인 왕적은 ‘봄날 계수나무의 문답’(春桂問答)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봄날 계수나무에게 물었다. ‘복사꽃 살구꽃이 한창 흐드러져 사방에 봄빛이 가득한데 그대는 어찌 홀로 꽃이 없는가?’ 계수나무가 답했다. ‘봄꽃이 어찌 오래가겠는가. 바람과 서리에 흔들려 꽃잎 질 때, 나 홀로 꽃피움을 그대는 모르는가.’” 지금 활짝 피지 못한 어떤 청춘도 좌절할 필요 없다. 늦게 피는 꽃도 있는 법이니.
이상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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