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순리열전’에는 공의휴라는 재상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법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원칙대로 집행한 청백리로 꼽힌다. 그는 “고액 연봉의 공직자가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못하도록 했고, 대형 사업의 수혜자가 작은 이익까지 챙기지 못하도록”(使食祿者不得與下民爭利, 受大者不得取小.) 했다. 정경유착으로 관리들이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재벌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장악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어느 날 손님이 그에게 물고기를 선물했으나 공의휴는 거절했다. 손님이 물었다. “제가 듣기에 재상께서 물고기를 좋아하신다 하여 물고기를 선물했는데 왜 거절하십니까?” 공의휴가 답했다. “물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재상이니 스스로 물고기를 사먹을 수 있습니다. 이 물고기를 받아서 파면당하면 누가 제게 물고기를 선물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받지 않는 것입니다.” 정경유착을 거부한 사례다.
공의휴가 어느 날 집에서 밥 먹는데 야채 맛이 좋았다.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집 앞 텃밭에 아욱을 기른다고 했다. 공의휴는 텃밭의 아욱을 다 뽑아버렸다. 다른 날 공의휴는 집안에 고운 옷감이 있는 걸 보고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며느리가 짠 것이라고 했다. 공의휴는 며느리를 쫓아내고 베틀을 태운 뒤 이렇게 말했다. “채소 가꾸는 농민과 직물 짜는 여인들은 대체 어디다 물건을 내다 팔란 말이냐!” 여기서 ‘발규거직’(拔葵去織)이란 성어가 나왔다. 직역하면 “아욱을 뽑고 베틀을 내버린다”는 말로, “공직자로서 민간과 이익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건 재벌의 골목 상권 장악을 거부한 사례로, 중국식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수 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하루 일당 5억짜리 ‘황제 노역’ 꼼수가 화제다. 그 판결을 내린 장병우 광주법원장은 우연히 대주건설이 지은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고, 그가 살던 집은 우연히 대주건설 산하 개발회사가 사들였다고 한다. 장 법원장은 최근 사표를 냈다. 지금 심판대에 오른 것은 한국 사법부와 졸부들의 양심불감증이다. 공직자와 졸부들은 공의휴가 왜 물고기를 받지 않고 ‘발규거직’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자.
이상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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