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은 조선 후기 서인의 영수이다. 그가 손아래 오촌의 방에 들어갔다가 남인 윤휴가 쓴 <중용주>란 책이 있는 걸 보았다. “이게 무슨 책인가?” “윤휴가 쓴 것인데 주희의 주석보다 낫다며 친구들이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송시열은 즉시 책을 바닥에 팽개치면서 “윤휴 따위가 뭐길래 감히 이런 걸 쓴단 말이냐? 너는 내가 윤휴를 배척하는 줄 알면서 이따위 물건을 책상 위에 쌓아두느냐?” 이 일화는 <송자대전>에 실린 송시열 자신의 기록이다. 송시열은 주희의 주석을 성경처럼 받들었기 때문에, 조선 사람 윤휴가 <중용>에 대해 주석을 쓰는 건 발칙한 죄악이라 여겼다. 윤휴는 결국 ‘불온사상을 유포하는 반역자(斯文亂賊)’로 몰려 사약을 받았다. 송시열은 왜 윤휴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집어던졌는가.
송시열의 기록을 보면, 이율곡의 반대파는 그가 젊었을 때 출가했던 전력을 끄집어내어, 율곡이 자신을 ‘소승’(小僧)이라 칭한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유학자에게 그가 승려라고 말하는 건, 오늘날로 치면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고려 문인 이색은 ‘지금 본 일(卽事)’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북쪽 절에서 도 닦는 사람은 즐거워 자족하고/ 남쪽 집의 유학자는 한가로이 여유 있는데/ 문을 나서다 둘의 눈이 마주쳐도 서로 아무 말 않으니/ 간과 쓸개의 거리가 초나라와 월나라만큼 멀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네.”(北寺道人樂自足/ 南家儒者閑有餘/ 出門相見不相語/ 肝膽方知楚越如)
한국인에게는 도그마를 숭배하는 기질이 있는 듯하다. 주자학이 조선에 들어오면 교조적인 조선성리학이 되고, 기독교가 조선에 들어오면 배타적 전도주의 기독교가 된다. 교조주의는 대화의 적이다.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으며, 상대에게 배우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대화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 나는 상대의 발언을 넘어서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상대 또한 내가 말한 것 이상의 생각을 얻어 갈 수 있다. 내가 상대에게 ‘종북’이나 ‘종미’라는 딱지를 붙일 때, 나는 이 사회를 사상적 황무지로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이상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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