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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한국 관료의 여우적 본질

등록 2014-03-17 18:33수정 2014-03-17 22:42

노나라 군주가 공자를 법무부 장관(大司寇)으로 기용하기 위해, 당시 세 실권자인 삼환과 회의를 앞두고 현인인 좌구명에게 물었다. “과인이 공자에게 정치를 맡기기 위해 삼환과 상의하려 합니다.” 좌구명이 말했다. “공자는 개혁가입니다. 개혁가가 정치를 맡으면 개혁 대상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세도가들과 상의해서 무슨 결론이 나겠습니까?” 군주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좌구명이 답했다. “주나라에 여우가죽옷과 양고기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최고급 여우가죽옷을 만들기 위해 여우와 가죽에 대해 상의를 했고, 최고급 양고기 요리를 위해 양과 고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우들은 첩첩산중으로 달아났고, 양들은 깊은 숲 속으로 숨었습니다. 그 사람은 5년 동안 양고기 요리를 맛도 못 봤고, 10년 동안 가죽옷을 구경도 못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논의 대상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임금께서 공자를 기용해 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개혁 대상인 삼환과 상의하겠다니, 이는 여우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 여우와 상의하고, 양고기 요리를 만들기 위해 양과 토론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군주는 삼환과 상의하지 않고 직접 공자를 불러 장관 자리에 앉혔다. <태평어람>에 실린 이야기다. 공자가 노나라 장관에 기용됐다는 대목은 설화이지만, 개혁 대상과 개혁에 대해 논의한다는 뜻의 ‘여호모피’(與狐謀皮) 혹은 ‘여호모구’(與狐謀裘)란 말은 개혁이 왜 실패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여우를 호랑이로 바꿔 ‘여호모피’(與虎謀皮)라고 하기도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이를 익살스럽게 “개혁 인사를 구하면서 기득권 세력에게 묻는 것은, 첩을 들이면서 아내와 상의하는 것과 같다”(求才能問於貴寵, 如納妾而謀於婦也)고 했다. 썩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는 암 덩어리”이니 “싹 다 들어내”고, “불타는 애국심”으로 경제를 살릴 것을 관료들에게 주문했다. 이 정권의 규제 개혁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보수 언론조차 회의적이다. 여우와 가죽에 대해 상의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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