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조화를 이루지 같아짐을 추구하지 않고, 소인은 같아짐을 추구하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아지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춘추좌전>에 나오는 제나라 안영의 논의가 절실하다. 제경공에게는 양구거라는 총신이 있어서 임금의 비위를 귀신같이 맞추었다. 제경공이 양구거가 자신과 조화를 잘 이룬다고 좋아하자, 안영이 ‘조화를 이룸(和)’과 ‘같아짐(同)’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고깃국을 끓이는 것과 같습니다. 요리사는 싱거우면 간을 더하고 짜면 물을 더해 맛을 조절합니다. (…) 군신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주가 긍정하는 정책에 부정적인 면이 있다면 신하는 부정적인 면을 지적해서 제거하여 정책이 온전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 군주가 부정하는 정책 가운데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신하는 긍정적인 면을 제기하여 부정적인 면만을 제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양구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긍정하는 것은 양구거도 긍정하고, 임금께서 부정하는 것은 양구거 또한 부정합니다. 만약 맹물에 맹물로 간을 한다면 누가 그걸 맛있게 먹겠습니까? 만약 작은 거문고와 큰 거문고가 오로지 하나의 음만 연주한다면 누가 그걸 즐겨 듣겠습니까?(若以水濟水, 誰能食之? 若琴瑟之專一, 誰能聽之?) 무조건 같아짐만 추구해서는 안 되는 게 이러합니다.” 현대 정치학에서는 다른 의견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을 민주주의라 하고, 물에 물을 타는 ‘이수제수’(以水濟水)의 방식으로 모든 의견이 같아질 것을 추구하는 것을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같아짐의 추구는 이미 위험 수위에 닿았다.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집요한 수사 방해, 복지공약의 폐기 처분, 간첩 증거조작 등에서 우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소인의 행태를 본다. 이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 어떤 비판도 없다는 것은, 스스로 ‘이수제수’의 집단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물에 물을 탄 요리, 모든 악기가 같은 소리를 내는 디스토피아의 음악을 우리는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가.
이상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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