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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등록 2014-03-07 19:45수정 2014-03-07 21:57

정희진의 어떤 메모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민음사, 2007
책 제목은 우주를 요약한다. 질서, 연관, 아름다움, 우연, 혼돈… 많이 팔린 책의 패러디 <악마는 프라다를 싸게 입는다>, ‘민족’이 들어가야 잘 팔린다는 출판사의 주장으로 탄생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가슴 아픈 주제가 콕 박힌 <끝났으니까 끝난 거지>, 제목과 내용이 정반대인 푸코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등…. 며칠 전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 하는 법” 유의 책을 샀다가 ‘낚시성’ 제목임을 알고 낙담했다. 하여간, “ ~ 해라, ~ 하지 마라, ~ 화내지 마라, ~ 마음을 비워라” 이런 제목을 조심해야 한다. 내용과 관련성이 없는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제목이 있다. 아마 이 방면의 기원(?)은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34년)가 아닐까.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지만 이 통속 소설이 영어로 쓰여지지 않았다면 ‘세계문학’이 될 수 있었을까마는, 오늘의 주제는 아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본 사람 중에 제목에 의문이 없었던 이들은 드물 것이다. 작중에 우편배달부는 안 나온다. ‘고상한’ 소설은 아니어서 제시카 랭, 잭 니컬슨의 동명 영화가 개봉했을 때 당시 체신부의 항의로 ‘우편배달부’는 ‘포스트맨’이 되었다. 성적 묘사는 많지 않지만 전체적 분위기는 선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자유로운 매력이 있다.

체신업무는 체신부, 정보통신부의 우정사업본부,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지금은 미래창조과학부 소관이다. 체신(遞信)은 통념적 의미의 전달 업무인 “전하다, 여러 곳을 거쳐 전하여 보냄, 역참(驛站)”이라는 뜻이다. 담당 부처의 변화는 우편 업무가 단순한 집적(集積), 분류, 전달에서 뭔가 첨단 과학화된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

<국민과 서사>(호미 바바 편저, 류승구 옮김)를 읽다가 이 ‘암호’를 해독했다. “포스트맨은 - 벨을 - 두 번 -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모든 음절이 중요하다. 첫째, 우편배달부뿐 아니라 발신자나 방문객은 두 번 행동한다. “딩동, 딩동”, “똑, 똑”, “여보세요? 안 계세요?” 한 번 시도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한번만 길게 누른다면 ‘싸이코’ 혹은 최소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상당한 부정적인 행동의 전조다. 그러니까 “언제나 두 번” 울린다.

둘째, 우편 제도와 인쇄술의 발달은 근대 국민국가의 중요한 물적 토대였다. 그 이전의 사자(使者), 사신(使臣)은 집단과 집단이나 개인 간의 1:1 메신저였지만 철도의 발달과 함께 온 국민의 횡적인 전달(trans/port)제도로 자리 잡았다. 사자에 비해 동시적 다중적 소통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문자는 개인화, 대중화되었다. 사람들은 직접 서신을 주고받는다. 개인의 자기표현과 통신 수단의 진보 같지만, 우편배달부는 중앙집권의 국가가 국민의 메시지를 조직하는 국가의 대리인(메신저)이다. 국가가 작동하지 않거나 통제(검열…)하면 소용없다. 즉, 메신저가 메시지보다 우선한다.

우편 제도가 없었을 때의 사건들, 예를 들어 “이 편지를 지참한 자를 죽이라”는 일명 벨레로폰 효과는 메시지와 메신저의 관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 왕은 자기 부인을 탐했다는 누명을 쓴 코린토스의 벨레로폰 왕자를 죽이는 방법으로 이런 편지를 배달시킨다. 전달자가 편지 내용이다. 문명의 발달?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편지가 아니라 전달자다. 이것이 정치와 제도의 시작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이 소설의 주인공 남성은 모두 죽는다. 프랭크는 멕시코 출신, 그의 정부의 남편은 그리스인이다. 우편배달부는 국가를 대변하는 국민이다. 이들은 ‘소수자 우편배달부’쯤 될 것이다. 벨 울리기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 같은 행위다. 떠도는 삶, 이유 모를 죽음, 우편배달부끼리 쫓고 쫓기는 삶.

우리는 벨레로폰 왕자처럼 메시지를 간직하고 죽는다. 메시지는 대개 비문(秘文)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편지 내용을 알고 죽거나 모르고 죽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정확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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