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양혜왕에게 물었다. “사람을 죽일 때,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게 차이가 있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차이가 없습니다.”
맹자가 또 물었다. “사람을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차이가 없습니다.”
두 번의 예비 질문 뒤 맹자는 하고 싶은 얘기를 꺼냈다.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가득하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가득한데, 백성들은 굶주려 얼굴빛이 뜨고 들판에는 굶어죽은 주검이 널려 있다면, 이건 짐승을 몰고 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백성의 부모로서 정치를 하면서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꼴이라면, 어찌 백성의 부모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솔수식인’(率獸食人)이라는 성어가 나왔다. 짐승을 몰고 가 사람을 잡아먹도록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포학한 정치를 뜻한다.
맹자는 또 양혜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와 돼지가 사람 먹을거리를 먹어도 수수방관하고, 길가에 굶어죽은 주검이 널려 있어도 나라 창고를 열지 않으면서, 사람이 죽은 건 ‘내 탓이 아니라 가을걷이가 안 좋은 탓’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내 탓이 아니라 칼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사람들의 죽음을 가을걷이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임금은 천하 백성의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
고염무는 맹자의 ‘솔수식인’ 논리를 이어받아 이렇게 말했다. “복지니 정의니 하는 구호가 난무하지만,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고 나아가 사람들까지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일러 세상이 망했다고 한다.”(仁義充塞, 而至於率獸食人, 人將相食, 謂之亡天下。<日知錄>)
고염무에 따르면, 송파구 세 모녀의 죽음은 세상이 망해가는 징조이다. “죄송하다”며 세상을 뜬 이들의 죽음 앞에 정작 죄송해야 할 것은 정부임에도, 당국은 이들이 복지 서비스 대상인지, 신청을 했는지 따위만 따지고 있는 걸로 보인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게 같다는 맹자의 말은 오늘에도 여전히 진실이다.
이상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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