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의 고전중독
중국 춘추시대에 초나라는 남쪽의 강대국이었고 진(晉)나라는 서쪽의 강대국이었다. 서기전 547년, 채나라의 성자(聲子)라는 인물이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진나라에 머물다 초나라로 왔다. 초나라의 영윤(재상) 자목이 성자를 맞아 진나라의 정세를 탐문하면서 초와 진 가운데 어느 나라 인재의 역량이 뛰어난지 물었다. 성자는 이렇게 답했다. “초의 좋은 목재와 가죽을 진에서 쓰듯, 초에 인재가 있으나 실제로 그들을 쓰는 건 진입니다(雖楚有才, 晉實用之).” 여기서 다른 나라의 인재를 활용한다는 뜻의 ‘초재진용’(楚才晉用)이라는 성어가 남았다.
자목은 더 물었다. “그들은 핏줄도 안 따지는가?” 성자는 이렇게 답했다. “핏줄도 따지지만, 초의 인재를 현실적으로 많이 씁니다.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상벌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포상을 남발하면 나쁜 자도 상을 받고, 형벌을 남용하면 좋은 이도 벌 받을 우려 때문입니다. 차라리 포상이 지나친 게 낫습니다. 좋은 사람을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라에 좋은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망합니다.” 자목은 이어 초나라의 잘못된 상벌과 부패 때문에 초나라에서 진나라로 망명한 뒤 진나라의 참모가 되어 초나라와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운 인재들인 석공, 옹자, 자령, 묘분황 등의 사례를 상세히 설명했다. 석공은 초나라가 야간기습에 약하다는 점을 알려주었고, 옹자는 초군의 퇴로를 열어주어 도주를 유도했으며, 자령은 오나라와 손잡고 외교술로 초를 괴롭혔고, 묘분황은 초의 왕실 군사가 정예부대임을 알려주었다.(<춘추좌전> 양공 26년)
박근혜 대통령도 관심을 보였다는 귀화 배경에 대해 빅토르 안 자신은 기자회견에서 온건하게 말했지만, ‘초재진용’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앞으로 인재의 글로벌 유동은 더욱 심화할 것이고, 이런 추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성자에 따르면 우리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은 이런 점이다. 이 나라는 부패 척결에 엄격하고 억울한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나라인가. 편견을 줄이고 기회를 열어두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인가. 한국의 정치는 과연 초재진용을 막을 만한 수준인가.
이상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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