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통일은 대박일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독일, 혹은 사실상의 통일을 추구하는 중국과 대만의 사례만 봐서는 안 된다. 아라비아반도의 예멘 같은 통일도 있다. 통일은 되었으나,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무장투쟁을 하는, 분단보다 못한 통일 말이다. 그런 통일이라면 막아야 한다. 차이는 무엇일까? 과정이 없는 통일은 재앙이다.
통일은 도둑처럼 올까? 독일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가? 동독 주민들이 선거에서 통일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오랜 교류와 상호이해의 결과다. 독일 통일 모델은 우리와 얼마나 멀리 있는가? 자유를 찾아 온 탈북자들이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 안의 공존은 너무 멀고, 차별의 벽은 높다. 동독 주민이 서독 체제를 바라봤던 시선과 북한 주민이 우리 체제를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차이가 너무 크다. 통일을 주도하려면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는 가정은 과연 근거가 있을까? 그렇게 되면 정말로 흡수통일이 이루어질까? 북한의 유일체제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한 권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약에 드라마처럼 북한의 일부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이 통일을 선택할 것으로 보는가? 통일이 되면 모든 것을 잃는데, 그것을 바라겠는가? 북한이라는 국가는 무너지지 않는다. 정권이 타락할 수 있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그래서 체제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통일이 가능한가?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가 무너지지 않는데, 통일이 도둑처럼 올 수 있는가? 혹시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해방 이후 두 개의 통일론이 충돌해왔다. 평화통일론과 무력통일론이다. 전두환 정부가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발표한 1982년 이후 무력통일론은 공론의 장에서 사라졌다. 간혹 탱크 몰고 북한으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상식과 합리에서 벗어난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무력통일론인가? 그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정부가 주장하는 논리의 맥락에 그런 의도가 실려 있다. 정부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부정하고, 교류와 협력을 거부하고, 그러면서 통일을 준비하자고 말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북한을 무너뜨리지 않고 말이다. 왜 아무도 묻지 않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통일과정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왜 요구하지 않는가? 야권은 묻지 않는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들은 평화통일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왜 이 엄중한 시기에 평화를 말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도 평화통일론을 대변하지 않아도 될까? 그런 시대가 있었는가?
통일 논의에 ‘어떤’과 ‘어떻게’가 실종되었다. 이래도 되는가? 통일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폭력이 남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전쟁을 겪어봤기에, 전쟁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지, 우리는 안다. 그래서 무력통일론을 반대하는 것이다. 누가 평화통일이라는 다수의 합의를 깨뜨리려 하는가? 평화통일이라는 단어가 상투성을 벗고 다시 우리 앞에 서 있다.
하루빨리 통일담론에서 사라진 ‘어떻게’가 돌아오기를 바란다. 어떻게 해야 북한 주민들이 통일을 선택할까? 어떻게 해야 전쟁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분단보다 나은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가 없는 통일담론은 얼마나 허망한가? 북한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멀어질 뿐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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