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
이 땅에서 ‘안녕’ 대자보가 한창 물결치던 지난해 12월12일, 독일 함부르크 중앙역 광장은 3500여명의 학생들로 넘쳐났다. 난민추방에 반대하는 함부르크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불법적인 인간은 없다”, “모두에게 체류권을”, “국경반대, 국가반대, 추방반대”라고 쓰인 푯말과 현수막이 끝없이 이어졌다.
12살 펠틴은 작문 수업을 서둘러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달려왔다. 이레네 할머니도 초등학생 손녀의 손을 잡고 왔다. “우리 손녀가 공적인 삶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이곳에서 “사회과목 현장수업”을 진행했고, 독일 교원노조는 “학생파업은 정치교육 실습”이라며 학생들을 응원했다. 함부르크 교육청도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타당한 주제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안녕’ 대자보를 차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내려보낸 우리 교육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10대 학생들의 시위는 독일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정치의식은 놀라운 수준이다. “아마존을 살려내라.” “아웅산 수치를 석방하라.” “걸프전을 중단하라.” 어린 시위자들의 구호는 생태·인권·정치 이슈를 넘나든다. 이들의 잦은 ‘가투’ 때문에 교통정체가 빈번해지자, ‘택시운전사들의 공적은 초딩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서열화된 대학체제의 상징이던 소르본대학을 해체시켜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킨 것은 바로 고등학생들 자신이었다. 프랑스의 대학이 오늘날 민주적이고 평준화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8년에 벌어진 대대적인 학생운동 덕분이다.
10대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안나 뤼어만이다. 10살 때 생태계 파괴의 실상을 보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안나는 12살에 그린피스 회원이 되었고, 14살에 녹색당에 입당했다. 17살엔 헤센주 녹색당 청년 대변인이 되었고, 18살에 마침내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독일 최초의 고등학생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이다.
필자는 2005년 안나 뤼어만을 초청하여 ‘청년정치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불평만 하지 말고 참여하자. 우리 스스로 세상을 바꾸자”는 안나의 정치 슬로건이 인상적이었다. ‘세대 대표성’이라는 개념도 신선했다. 연금 문제처럼 미래 세대의 부담이 결정되는 자리에 정작 그 당사자가 없는 상황은 부조리하다고 했다.
우리에게 안나는 불가능한가? ‘한국의 안나’가 탄생하려면 적어도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선거/피선거권이 18살로 낮춰져야 한다. 선거/피선거권이 16살로 낮춰지는 세계적 추세에 비춰 보면 선거권 19살, 피선거권 25살이라는 우리의 현행 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둘째, 초등학교에서부터 정치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한다. 셋째, 정치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정치혐오를 더 세련된 정치적 취향인 양 조장하는 사회는 수상하다.
우리 근대사를 돌아보면 10대는 기실 언제나 정치변화의 기폭제였다. 3·1운동 이후 일제에 대한 최대 규모의 저항운동인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것은 광주제일고 학생들이었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도 마산상고 1학년생 김주열의 죽음이었다. 5·18 광주에서도 고등학생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 이 나라의 정치세계에 10대는 없다. ‘입 닥치고 공부나 하라’는 것인가. 젊은이들을 정치적 몽매상태에 묶어두려는 자들은 누구이며,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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