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민음사, 2004
<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민음사, 2004
이 책의 첫 문장은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마지막은 “나는 날마다 살아 있기로 선택한다. 그것이야말로 드문 기쁨이 아닐까?”이다. 이 글귀들이 쉽게 이해되는가. 나는 여전히 어렴풋하다.
이 책의 ‘한 땀 한 땀’은 모두 심오하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매순간 감탄하느라 숨을 두 번씩 쉬게 된다. 처음 읽었을 때 연필로 밑줄을 그었는데 그 표시가 두 번째 읽을 땐 방해가 되었다. 책을 다시 사서 표시하지 않고 또 읽었다. 원서로도 읽었다. 참고문헌과 주(註) 내용도 중요해서 분책해,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삶의 찬가인 이 책은 10년 전 한국 사회에서 722쪽 3만원 가까운 가격에도 불구하고 1년 만에 3쇄를 찍었다. 원제는 ‘정오의 악마-우울증의 모든 것’(The Noonday Demon: An Atlas of Depression). 이 책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몇십년간은 우울증 관련 저술에 도전하는 이가 드물었으리라.(2001년 출간되자마자 22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내가 아는 한 우울증에 대해 정치적, 학문적, 미학적, 윤리적으로 <한낮의 우울>보다 잘 쓴 책은 없다.(다만, 성별과 우울증 부분은 다소 빈약하다.) 하나의 문장을 고를 수 없는 책이다. 우울증의 직간접 체험자나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문장만으로도 독후감이 흘러넘칠 것이다.
사람마다 특정 단어를 오랫동안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에서 나의 경험은 ‘미봉책’이었다. 오늘의 메모는 제목도 선택하지 못한데다 언어의 사회적 약속에 무지했던 나의 독서 실패기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처럼 근거 없는 말도 없다. 우울도 감기도 가벼운 병이 아니며, 질병으로서 우울증과 감기의 작동 방식은 매우 다르다. 굳이 비유한다면 에이즈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완치 개념을 적용하기 힘든 질병이다. 잠복성, 만성 질환, 치명성, 외로움, 사회적 낙인…,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면역력의 심각한 기능 저하다. 신체가 외부 자극에 대처할 수 없는 상태. 면역성이 사라지면서 부드러운 미풍조차 사포로 미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우울증 환자의 증상은 인생의 본질이 순간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의학에서 어려운 연구 분야 중 하나가 사인(死因) 규명이라고 한다. 단일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원인 제거가 불가능한 것은 원인을 밝히기도 어렵지만 알아낸다 해도 그 원인을 구성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내 두뇌의 암호 속에 영원히 살고 있다. 그것은 나의 일부다…. 나는 우울증을 제거하려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정서적 메커니즘들을 손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과학이든 철학이든 미봉책(half-measures)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59쪽) 기존의 인식 기반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우울증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리라.
나는 이제까지 ‘미봉책’을 제대로 꿰매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었다. 완전히 봉합하지 않는 미봉(未縫), 혹은 미봉(未封)인 줄 알았던 것이다. 마치 야구공의 빨간 실 땀 자국처럼 확실히 꿰매 그 자국이 선명한 것이 좋은데, 미봉책은 그렇지 못한 어중간한 대응 방식, 불충분한 처리라고 생각했다.
아뿔싸! 사전적 의미의 미봉책은 미봉책(彌縫策)이었다. 미(彌)와 봉(縫), 모두 꿰매거나 깁는다는 뜻으로 흔적과 자국이 남는 것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본질적 해결이 우월하고, 미봉책은 속임수나 일시적 방도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한 단어다. 아무런 표시가 남지 않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 찬사인 이유다.
튼튼하게 꿰매거나 깁지 않음을 미봉으로 생각한 나의 생각과 미봉 자체가 문제라는 구도에서, 꿰맴은 상반된 가치다. 나는 잘 꿰매야 한다고 여겼지 꿰맴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흔적 없음은 존재 없음이다. 아름답지도 완전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가능하지 않다.
생로병사가 사실이고 무병장수는 희망, 아니 탐욕이다. 꿰맨 자리는 아물기도 하고 터지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생명은 미봉의 점철. 그러므로 미봉책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영원한 방도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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