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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벌레 먹은 아비 세대의 청산

등록 2013-12-30 18:45수정 2013-12-30 22:16

한해가 저문다.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낡은 것은 보내고 새것을 맞이할 때이다. 낡은 것이 고이면 썩는다. <주역>에는 아버지 세대의 낡은 것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 괘가 하나 있다. ‘고괘’(蠱卦, 벌레 먹음)가 그것이다. 소동파는 고(蠱)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릇을 오래 쓰지 않아 벌레가 생기는 것을 고라고 하고, 사람이 오랫동안 안일에 빠져 질병이 생기는 것도 고라고 하며, 세상에 오랫동안 별일이 없어 폐단이 생기는 것도 고라고 한다.” 고라는 글자의 모양을 보면 그릇 안에 벌레가 우글거리고 있는 상황을 본뜬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고괘’에는 아비 세대에 대한 두 가지 노선이 나온다. 하나는 그릇에서 썩은 벌레를 철저히 긁어내는 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감히 청산 못 하고 물렁하게 대하는 노선이다. <주역>은 철저한 청산에 대해선 “아버지의 벌레 먹은 과오를 바로잡으니, 조금 뉘우침이 있겠지만 큰 허물은 없을 것”(幹父之蠱, 小有悔, 无大咎)이라고 하고, 물렁한 태도에 대해선 “아버지의 벌레 먹은 과오를 덮어두니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裕父之蠱, 往見吝)이라고 하고 있다. 간부지고(幹父之蠱)와 유부지고(裕父之蠱) 가운데 어떤 길이 미래를 여는 길인지는 명확하다.

일본에서 전범 14명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현직 총리가 참배할 때, 중국에서는 마오쩌둥 탄생 120돌 추모 열기가 뜨겁다. 한국에서는 친일파와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가 다음 세대에 혼란을 주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는 모두 유부지고의 길을 걷고 있다. 벌레 먹은 그릇에는 새 밥을 담지 않으면서 왜 아버지 세대의 벌레 먹은 과오는 철저하게 청산할 지혜와 용기가 없는가. blog.naver.com/xuande

※지난 24일 ‘불통과 조현병’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2011년 미 정신의학회가 ‘스키조프레니아’란 병명을 ‘어튠먼트 디스오더’로 바꿨다는 내용은 잘못이며, 201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독자적으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바꾼 것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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