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최대의 참사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격파한 뒤 45만의 조나라 사병을 생매장한 사건이다. 이 일은 진나라의 심리전에서 비롯했다. 진나라는 조나라의 원로장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는 있지만 전혀 인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첩자를 통해 “진나라는 오직 조괄이 장군 될까봐 떨고 있다”는 거짓정보를 퍼뜨렸다. 조나라 효성왕은 거짓 명성을 믿고 조괄을 장군 자리에 앉히려 했다. 뛰어난 외교관인 인상여가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장군감이 아닙니다. 그는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풀로 붙여놓고 연주하려는 자입니다. 그는 전쟁을 책으로만 공부했지, 변화무쌍한 전쟁터를 이끌 역량은 없습니다.” 거문고의 기러기발은 앞뒤로 움직일 수 있어야 현을 조율할 수 있다. 이 대화에서 ‘융통성이 없다’는 뜻의 ‘교주고슬’(膠柱鼓瑟)이란 말이 남았다. 조나라 왕은 고집대로 조괄을 장군으로 앉혔다. 그 결과 조나라는 진나라에 대패하여 조괄도 죽고 45만의 군사가 끔찍하게 생매장 당했다. 현실과 조율할 능력이 없는 이가 중책을 맡았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공자는 “고집불통을 극도로 미워한다”(疾固)고 했다. 맹자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극단적 이타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둘 사이의 중용을 고집하는 일조차 융통성이 없다며 이를 ‘집중무권’(執中無權)이라 비판했다.
고집불통을 속어로 구비불통(狗屁不通)이라 한다. 본디는 구피불통(狗皮不通)이다. 개는 땀구멍이 없어 혀로 열을 내보낸다. ‘구피불통’이란 개 껍질처럼 불통이란 뜻이고, ‘구비불통’은 ‘개똥고집’이란 뜻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2011년 ‘정신분열증’이란 병명을 ‘조현병’(調鉉病)으로 고쳤다. ‘정신분열증’이란 말의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의 개선을 위해서다. 현악기의 조율 불량처럼 현실과 조율이 잘 안 되는 게 정신병이란 얘기다. 정신 분열이란 말보다 문제의 소재를 더 잘 드러낸다. 조율 문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통이라면, 그건 그다지 자랑할 일이 아니다. 평생 땀구멍 없는 개 껍질 속에서 사는 개조차 혀를 헐떡거리는 조율의 지혜가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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