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달아오르던 1966년 8월 마오쩌둥은 당 중앙위 회의가 열리던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사령부를 포격하라-나의 대자보’란 제목의 글을 배포했다. 석 달 전인 5월 베이징대에 대학 간부들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처음 나붙은 뒤였다.
이 대자보는 곧바로 베이징 시내 중난하이(중남해)에 걸리면서 홍위병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기폭제가 됐다. 홍위병 등 조반파(造反派)들은 류사오치가 이끄는 실권파가 당 기관지 등 각종 간행물을 장악한 상황에서 대자보를 대중 선동의 중요한 무기로 사용했다.(<모택동 비록>)
우리나라에서 대자보는 1980년대 학생운동 과정에서 크게 유행했다. 1980년 민주화의 봄에 이어 1983년 학원자율화 이후 학생운동의 상징처럼 번져갔다. 대자보에는 5공 집권층의 비리 등 제도언론이 왜곡하거나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사건의 문제점이나 실상이 나붙곤 했다. 대자보가 일종의 풀뿌리 매체 구실을 한 셈이다.
학생운동의 퇴조와 함께 사라졌던 대자보는 몇몇 학생들이 개인적 소신을 밝히는 장으로 활용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2010년 3월 고려대생 김예슬씨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인 게 대표적이다.
최근 고려대에 처음 내걸린 뒤 사회적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학생운동의 맥을 이으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발언이지만 집단이 아닌 개인의 소신을 밝히는 형태라는 점에서 그렇다. 고려대 대자보를 계기로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대자보 운동이 벌어지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이 활발한 시절에 대자보가 주목받는 것은 그 독특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향해 나 홀로 외로이 광야에서 외치는 것과 같은 비장함을 페이스북 같은 문명의 이기에선 느끼기 어렵다. 과거 학생운동에서 유행했던 대자보가 부활한 걸 보면 정말 시절이 하 수상한가 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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