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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물에 빠진 나를 구한 통나무가 나를 물속에 붙잡아 둘 때

등록 2013-12-13 19:52수정 2013-12-13 21:14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달빛 아래서의 만찬>, 아니타 존스턴 지음, 노진선 옮김
넥서스북스, 2003
아버지는 하루 3갑, 줄담배를 태우시는 체인 스모커다. 담뱃불은 기상 직후 딱 한번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갈 땐 결국 담배를 사게 된다. 있는 담배도 없애버릴 판에, 담배 사는 데 내 돈(!)을 쓴다. 나는 과자 중독이다. 먹는 것으로 인생고에 대처한다. 내 건강을 염려한 지인들이 과자 대신 술, 담배를 권할 정도다. 그렇지만 친구들도 내게 과자를 선물한다. 내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술, 담배, 도박, 초콜릿, 관계, 섹스, 쇼핑, 미디어(스마트폰), 게임… 사람들은 다양한 대상에 중독되어 있다. 중독되지 않은 몸은 드물다.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긍정적 중독(일, 운동, 공부…)인 경우 덜 문제가 될 뿐이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중독자의 의지 부족이나 인격적 결함에 있다기보다는, 그 대상이 위로와 즐거움을 주거나 삶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중독은 생존을 도와준다(“…없이는 못 살아”). 그러니 지나친 수치심이나 굴욕감, 좌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 감정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중독은 누구나 겪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대응일 뿐,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여성의 섭식 장애 관련서 중에서 관점, 현실 인식, ‘해결책’과 스토리가 모두 좋은 책이다. 중독 증상 때문에 사회의 경멸적 시선과 자기 비하에 지친 이들이 읽으면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야기와 은유는 흥미진진하고 깊이와 통찰이 넘친다. 알코올, 담배, 마약 중독은 니코틴 같은 특정 성분에 대한 중독이다. 그런데 폭식은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중독이다. 배고파서, 맛있어서,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심리적 허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심리적 허기는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이 없다. 위는 한정되어 있는데 음식은 계속 들어온다. 몸이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내가 반복해서 읽는 부분은 통나무 이야기다. “폭우 후 물살이 사납게 불어난 강물에 빠졌다. 다행히 통나무가 떠내려 와서 붙잡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 숨을 쉬며 목숨을 부지한다… 물살이 잔잔한 곳에 이르자 헤엄치려 하는데, 한쪽 팔을 뻗는 동안 다른 쪽 팔이 거대한 통나무를 붙잡고 있다. 한때 생명을 구한 그 통나무가 이제는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 강가의 사람들은 통나무를 놓으라고 소리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까지 헤엄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40~43쪽)

과거엔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지금은 위협이 되는 것. 작가는 중독을 통나무에 비유한다. 인생에서 완전한 기쁨이나 완벽한 절망은 없다. 한때 나를 구원했던 것(사람, 생각, 조직…)이 나를 억압하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나의 성장 때문일 수도 있고 대상의 변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내게 이 이야기는 분리의 어려움에 대한 비유였다. 20년 된 관계, 30년 된 생각, 사라진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

몸의 한 부분은 중독되어 있고 한 부분은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대개는 이 싸움에서 패배를 ‘선택’한다. 상실은 너무 아프고 위로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시도와 좌절의 반복. 절망과 자학. 나는 캐러멜 마카롱을 입에 물고 울먹인다. “어차피 구원받지 못하는 인생이 있고 극복되지 않는 상처가 있다. 그냥 물에 빠져 죽자.” 그러나 인생의 고문도 잠시 숨을 고르는 법, ‘악마’(또 다른 나)가 문지방에 서서 나를 쳐다본다. 역치( 値) 상태, 예를 들어 음식물이 위장에서 입으로 다시 나오는 경지에 이르면 다른 이야기가 절박해진다.

인생이 강물이 아니라 사막을 혼자 걷는 일이라면, 애초에 물에 빠진 사람도 없다. 우리가 선택한, 그립지만 괴로운 대상들은 사막을 지나가다 잠시 스친 풍경들이다. 조우했을 뿐 오아시스에서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아니다. 인생의 오아시스가 없다고 생각하면 익숙한 것들의 막강한 존재감이 다소 상대화된다. 중독보다는 생존의 힘이 세다고 믿는다. 천천히 조금씩 이별할 수 있다.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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