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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이석기 녹취록 ‘조작 여부’ 수사해야 / 김보근

등록 2013-11-24 19:19수정 2013-11-26 16:07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이석기 그룹의 5월12일 합정동 모임과 관련한 ‘녹취록 수정본’을 읽었다. ‘수정본’은 <한겨레> 사회2부가 지난 18일 단독 입수한 국정원 ‘수사보고(5월12일 녹취록 등)’의 주요 내용이다. ‘수사보고’는 녹취록 작성자인 국정원 직원 문아무개씨 등이 국정원장에게 5월 모임 관련 애초 녹취록을 ‘수정 및 보강’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수정본을 읽은 뒤 느낌을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정원이 애초 녹취록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는지’ 여부를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62쪽에 이르는 수정 녹취록은 지난 8월 국정원이 언론에 흘린 녹취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줬다. 애초 언론에 흘린 녹취록 축약본은 ‘다가올 전쟁에 대한 물리적, 기술적 준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면 수정 녹취록에서는 ‘남한에서 혁명가로 살아간다고 믿는 이들이 느끼는 예비검속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더욱 크게 느껴졌다. 수정 녹취록에서 모임 참가자들은 여러 차례 ‘자신들이 예비검속 제1순위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앞으로의 고난 등에 대해 언급했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도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는 지난해 12월12일 광명성 3호 발사 성공, 그리고 지난 2월의 제3차 핵실험으로 ‘미제와 조선반도의 대결 양상’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그 이전까지는 ‘미국이 자신들의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세력은 외계인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북한이 그 상상 속 외계인의 실체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거기에 대한 ‘물질적, 기술적 준비’를 강조했다.

필자는 수정본 속 이석기 의원의 생각도 여전히 ‘80년대 낡은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미제와 한반도 자주세력의 대결’이라는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은 냉정하게 여러 측면에서 평가해볼 주제인데, 그는 ‘미제’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주장이 비록 낡았지만 학술 심포지엄 등에서도 토론의 주제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이석기 의원이 참석한 5월 모임이 이른바 내란을 모의한 ‘아르오’(RO) 회합인지, 진보당 경기도당의 단순한 시국 모임인지는 앞으로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검찰이 꼭 명심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애초 이런 엉터리 녹취록이 만들어진 것이 국정원의 의도인지, 단순한 실수인지를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지난 19일 단독 보도를 보면, 국정원은 녹취록을 모두 234곳이나 수정해 법원에 제출했다. 애초 “결전을 이루자” “전쟁을 준비하자” “결전 성지”로 적었던 것을, “결정을 내보내자” “구체적으로 준비하자” “절두산 성지”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애초 녹취록이 한결 호전적인 문장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이것이 단순한 실수 때문이었을까? 지난 15일 열린 내란음모 사건 제3차 공판에서는 재판장인 김정운 판사조차 “절두산 성지와 결전 성지는 글자 수가 달라 오인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의도적인 게 아니냐”고 문씨에게 물었다.

남재준 원장은 이 오류투성이 녹취록을 지난 10월8일 국회 정보위에서 공개했다. 그 뒤 이석기 의원이 구속됐고, 정부는 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모두 이 엉터리 녹취록 공개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만일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녹취록을 조작했다면, 그것 자체로 큰 범죄다. 국가기관이 자신에 대한 개혁 요구를 피하기 위해 국민 전체를 속인 것이기 때문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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