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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석기 전 의원 내란선동 유죄 판결에 의문 있다 / 윤성환

등록 2015-01-26 18:41수정 2015-01-27 11:44

대법원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내란선동’ 혐의는 유죄,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즉, 2심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내란음모 판결’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이야 백번 옳은 말이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판결에는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논리적으로 볼 때 내란음모 혐의가 무죄인데, 어째서 선동 혐의는 유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내란음모의 목적과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내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도 자연히 무죄가 아닌가? ‘선동’은 본질적으로 ‘음모’, 즉 ‘내란을 일으킬 계획’이 완성되었을 때 대중을 상대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란을 일으킬 계획이나 실행 준비조차 제대로 세워놓지 않았는데 내란을 ‘선동’했다니? 논리적 모순이다. 그리고 내란음모가 무죄라면 이석기 전 의원 등이 내란을 ‘모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모의’(謀議)야말로 ‘음모(陰謀)의 과정’으로서 그 자체가 음모이기 때문일 것이기에 말이다. 대법원이 설명한 대로 내란을 음모한 온상지로 지목되어온 아르오(RO) 조직 자체가 실체가 없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기실 3명의 대법관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선동 혐의마저 무죄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아울러 국가정보원이 결정적 증거물로 제출한 ‘녹취록’의 신빙성 여부에 대한 강력한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이 녹취록을 일방적으로 증거로 인정한 것 역시 문제가 있다. 녹취록에 대한 의혹들을 정리해보면 첫째, 국정원이 녹취록을 제보한 이아무개씨를 애초 ‘매수’했을 가능성이 있고 둘째, 애초 디지털 녹음기에 저장했던 녹음파일이 내·외장 하드디스크로 복사된 뒤 일부가 지워졌다는 점에서 엄밀하게는 원본이 삭제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셋째, 국정원은 녹취록의 내용을 수정·추가하면서 이석기 전 의원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호전적으로 보이도록 왜곡한 부분이 많다.(‘증거냐 아니냐, 이것이 문제로다’ <한겨레21> 제988호 참조) 그럼에도 대법원은 이 녹취록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였고, 이에 기초해 위와 같은 판결을 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야말로 ‘기계적 균형’을 유지하려 한 느낌이 강하다. 내란음모까지 유죄로 결정할 경우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비난에 휩싸일 것이고, 그렇다고 모든 혐의를 무죄로 결정할 수는 없는 애매한 처지 속에서 나온 결정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적되어야 할 점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자의성, 허구성, 정치성, 편파성이다. 왜냐면 헌법재판소는 이석기 의원의 합정동 모임을 사실상 내란음모로 규정하고, 아르오가 실재하는 조직인 것으로 인정하여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란음모에는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의 판결대로라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대법원의 이런 판결에 대한 의문조차 제대로 제기해볼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이다. 한마디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혹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몰아가는 분위기다. 어쩌면 사람들의 이런 태도야말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이 원하던 바가 아닐까. 사실 이석기 의원은 비록 ‘내란음모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여러 해 동안 언론은 그의 사건을 ‘내란음모 의혹 사건’이라 보도하지 않고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전 판결’하여 보도함으로써 그의 이름은 ‘내란음모의 대명사’처럼 통했다. 통합진보당은 이미 해산되었고, 이로 인해 이 땅의 진보세력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의문과 문제를 제기하고 심층 취재를 통해 비판을 수행해야 할 언론이 죽은 사회에서는, 상식적인 판단조차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윤성환 대구시 동구 동부로3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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