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엔 구양수가 생각난다. 구양수는 화려하기만 하고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썩은 글을 싫어했다. 그가 영주 태수로 있던 1050년, 눈이 내리는 날 취성당이란 누각에서 손님들과 술을 마시며 이런 제안을 했다. “눈에 관한 시를 쓰되 옥(玉), 달(月), 배(梨), 매화(梅), 표백하다(練), 솜(絮), 희다(白), 춤추다(舞), 거위(鵝), 학(鶴), 은(銀) 따위의 표현을 쓰지 말아보세.” 이렇게 지은 시가 ‘눈 오는 날 손님을 맞아 지은 시’(雪中會客賦詩)이다. “옛사람의 표현을 벗어던지고 티끌과 잡탕을 비웃으며/ 삼라만상을 파헤쳐 가물함과 그윽함을 엿보라.”(脫遺前言笑塵雜/ 搜索萬象窺冥漠) 이 작품은 시에서 상투어를 금하는 ‘금체’(禁體)의 효시다.
그로부터 마흔 해가 지난 1091년 눈 오는 날, 영주 태수로서 취성당에서 술을 마시던 소식은 문득 구양수의 일화가 떠올라 그의 요구대로 상투어를 몰아내고 ‘취성당에 내리는 눈’(聚星堂雪)이란 시를 썼다. 시의 서문에서 소식은 금체시를 쓰는 까닭에 대해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기묘한 아름다움이 나오기 때문”(於艱難中特出奇麗)이라고 설명했다. “여남의 선현(구양수)이 남긴 옛 일화가 있으니/ 취옹(구양수)의 시 이야기를 누가 이어갈 것인가/ 그때의 호령을 그대는 받아들여/ 한조각 쇠붙이도 허용하지 말고 맨몸으로 싸우게.”(汝南先賢有故事/ 醉翁詩話誰續說/ 當時號令君聽取/ 白戰不許持寸鐵) 구양수의 금체시는 소식의 ‘백전시’(白戰詩)로 이어졌다. 손쉬운 상투성의 쇠붙이를 버리지 못하면 작가가 아니다.
문학뿐 아니라 세상일이 다 그렇다. 가령 상투적 피 칠갑을 뺀 공포영화가 더 매력적이다. 정치도 그러하다. 국가 비상사태가 아닌 경우 국회의장의 의안 직권상정을 금한 ‘국회선진화법’은, 날치기라는 손쉬운 쇠붙이 칼춤 대신 토론과 협상을 통한 의정활동을 요구한 금체시와 백전시 같은 법조문이다.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기묘한 아름다움”이 나오듯, 지난한 토론과 협상을 통해 민주주의는 자란다. 두려운 것은 백전시와 국회의 날치기 백병전을 구별할 능력이 없는 이들이니, 그이들은 날치기에 불편하다고 국회법을 누더기로 만들자는 무뢰배들이기 때문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