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은 자객과 모반을 극히 두려워했다. 그의 위치정보는 자객을 부르는 신호이므로, 그 발설자는 목이 잘렸다. 그가 양산궁이란 곳에 행차했을 때, 승상 이사를 따르는 수레 수가 많은 것을 보고 언짢아했다. 누가 이사에게 이 말을 전해주자, 이사는 수레의 수를 줄였다. 이를 본 진시황은 “이건 누군가가 내 말을 옮긴 것”이라며 한 사람씩 심문했다. 발설자를 못 찾은 진시황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궁인들을 모두 처형했다.
진시황은 관리들과 주고받는 문서를 모두 기밀 처리해 알사탕만한 진흙으로 봉한 뒤 책임자의 도장을 찍어 올리도록 했다. 이 진흙도장을 봉니(封泥)라고 한다. 황제 집무실인 장대가 있던 시안 류자이촌에서는 황제의 것을 포함해 수천개의 봉니가 나왔다. 진시황은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기밀로 만들고 손수 처리했기 때문에, 하루에 결재할 문서의 양을 저울로 달아서 올리게 했다. 이를 ‘형석량서’(衡石量書)라고 한다.
진시황은 지방 순찰 도중 객사했다. 승상 이사와 조고는 모반이 두려워 그의 죽음을 기밀에 부치고, 마치 그가 살아 있는 것처럼 매일 음식과 보고를 올렸다. 함양으로 돌아가는 수레에서 주검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자 말린 어물 한 가마니를 함께 실어 생선 냄새와 헷갈리도록 했다. 고대의 빅브러더는 기밀과 거짓말이 섞인 악취에 휩싸여 황천길을 갔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국가안보국이 각국 정상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은 지난해 한해에만 기밀문서를 1억건 생산했다. 특급기밀 접근권을 가진 사람만도 140만명이나 된다. 현대판 ‘형석량서’다. 일본 정부는 최근 기밀 누설 처벌 강화와 기밀 기한 무제한 연기 등이 뼈대인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정권의 기밀문서 공작으로 일년 동안 정치가 표류하고 있다. 지난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츠와니에서 채택된 ‘국가 안보와 정보 접근권에 관한 국제 원칙’(츠와니 원칙)은 기밀 연한과 해제 수단을 법률로 정하고, 독립된 감시기관과 언론의 접근권을 보장할 것 등을 기밀 지정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 사회에 이 정도 원칙도 없다면, 진시황 시대와 다를 게 무엇인가.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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