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북한이 지난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봄 내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자, 북한 정권의 의도와 내부 상황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우선 북쪽의 의도와 관련해, 정권교체기를 맞은 한국과 미국·중국 등의 대북정책이 확정되기 전에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 몸값을 올리는’ 과거의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또 북쪽이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불안해 보이는 이유는 주로 새 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권력 재편 과정에서 찾았다. 경험 많은 관리들이 상당수 바뀌어 정책 입안·집행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고, 김정은이 군부를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하고 끌려다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권력불안·암투설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권력불안·암투설은 근거가 취약함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당시에 이미 무난하게 당 중심 체제를 구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책 방향도 일관된다. 핵·경제건설 병진이 그것이다. 강조점은 핵보다 경제 쪽에 있다. 북쪽은 올봄 군사대치 국면의 와중에서도 경제통인 박봉주를 총리로 기용하는 등 경제 중시 노선을 분명히 했다. ‘인민경제 선행부문·기초공업부문의 생산력 증대, 농업과 경공업에 대한 역량 집중을 통한 최단기간 내 인민생활 안정, 지식경제로의 전환, 대외무역의 다각화·다양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 등이 그 내용이다.
북쪽은 나선경제무역지대, 황금평·위화도경제지대,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국제관광특구 등 기존 4개 경제특구에 이어 올해 14개의 경제개발구를 만드는 등 ‘특구 경제’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러시아의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철도가 러시아의 투자로 재개통했다. 러시아는 내년에 나진항을 통해 석탄 120만t을 수출할 계획이다. 최근 평양과 지방 주요 도시엔 슈퍼마켓 형태의 대형 가게와 수입품 가게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북쪽은 지난달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설치한 국가경제개발총국을 국가경제개발위원회로 승격했다. 이 위원회는 특구들을 포함해 경제 전반에 대한 사령탑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북쪽은 지난해 6월28일 경제 주체의 기술력과 능력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의 경제관리개선조처를 발표하고, 8월부터 우수 공장 300여곳에 독립채산제를 도입해 1년 동안 시범 운영했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초쯤 공장과 기업의 자율성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개혁을 시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김강일 중국 연변대학 동북아연구원 원장은 ‘북한에 이미 시장이 상당히 커진 상태이기 때문에 생산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다’며 “중국이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개방이었다면 북한은 변화가 밑에서부터 올라가고 위에서 하는 수 없이 이를 수용하고 합리화하는 과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하는 한 경제 건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김정은 역시 체제를 안정시키면서 경제 개혁의 성과를 내려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갈등’이다. 대북정책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한 방향은 김정은이 핵 없이 체제 유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발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모든 6자회담 참가국들이 준거점으로 삼는 9·19 공동성명의 기반이 바로 이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기회를 갖고 있다.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북쪽에 핵 포기를 요구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럴수록 김정은은 체제 위협을 더 실감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김정은의 갈등은 ‘핵 포기 불가’라는 선택으로 바뀌고 한반도 위기가 다시 고조된다. 지금의 구도도 ‘김정은의 선택, 박근혜의 갈등’으로 역전된다.
북쪽이 체제 유지에 대한 부담 없이 시장경제 개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모든 관련국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열쇠는 사실상 우리가 쥐고 있다. 거꾸로 지금 현명하게 선택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그 기회조차 사라질 수가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이슈김정은의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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